1980년 미PGA투어 선수들은 아무리 많은 돈을 골프코스에서 번다 해도
그것은 몇몇 선수일뿐, 풋볼이나 야구선수들의 연봉에는 못미치므로 자동투어
자격제도를 고쳐야 한다고 소리를 높였다.

결국 미 PGA는 1983년 자동투어 자격을 전년도 상금 순위 60에서 125위까지
로 늘렸다.

이로 인하여 2위권 선수들의 경제적 생활은 나아졌지만 Q스쿨을 금방 나온
신인들에게는 PGA대회에 입문하기가 더룩 어려워졌다.

1983년 톰왓슨 시대이후 많은 수퍼급 선수들이 있었으나 두드러지게 뛰어난
선수는 없었다.

자니 밀러, 톰 와이스코프, 레이 플로이드, 헤일 어윈, 리 트레비노, 톰
카이트, 캘빈 피트, 커티스 스트레인지, 래리 넬슨, 래니 왓킨슨, 그리고
벤 크렌쇼등이 그들로 영국을 비롯한 유럽등 외국 선수들의 도전으로부터
괴로움을 당하고 있었다.

1986년에는 미국, 유럽, 호주, 아시아 등의 선수기량을 측정하기 위하여
소니 월드 랭킹 시스템이 만들어졌는데 이 시스템의 시작이후 상위권은 항상
외국 선수들 차지였다.

그중에는 호주의 그레고 노먼, 스페인의 세베 바예스테로스, 독일의
베른하르프 랑거, 일본의 토미 나까지마, 웨일즈의 이안 우즈넘들이 있었다.

그후 2년간 라이더컵은 유럽선수들이 전례없이 성과를 올렸다.

특히 1987년 미국에서 치러진 이대회의 승리는 60년만에 이루어진 것이다.

브리티시 오픈 또한 1983년 왓슨의 마지막 우승후 1984년 바예스테로스
1985년 샌디 라일(스코틀랜드), 1986년 노먼, 1987년 닉팔도(영국)순으로
이어짐으로써 당시는 미국 골프의 수난기였다.

만50세가 넘은 골퍼들로 구성된 미시니어 PGA가 1980년 정식으로 출범하게
되는데 이것은 미 PGA의 의미깊은 발전이었다.

1980년 2개 대회로 시작한 시니어 PGA투어는 1988년에는 35개대회(상금
1천만달러)롤 발전을 했고, 1980년에는 트레비노와 잭 니콜로스의 합류로
더욱 활기를 띄었다.

1961년까지는 흑인이 골프를 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하였다.

1975년 마스터스에 첫 출전한 리 엘더를 시작으로 찰리 시포드, 캘빈 피트,
제임스 브라운 등 흑인선수들이 얼굴을 내밀었다.

1980년대 후반에 각종 주니어 대회를 휩쓸어 돌풍을 일으킨 타이거 우즈가
1990년대에 와서 어니 엘스, 데이비드 듀발 등과 함께 20세기를 장식하는
대스타로 떠올랐다.

1997년 박세리를 필두로 재미교포 펄신, 작년 LPGA신인상을 받은 김미현,
박지은 등 한국여자 골퍼들이 잇단 미 LPGA진출은 한국 골프계에 희망을 불어
넣어 주고 있다.

특히 새천년에는 한국 골프 역사상 처음으로 미 PGA투어자격을 획득한
최경주의 건투를 빌면서 미 PGA이야기를 마친다.

< 전 미 PGA 티칭프로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3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