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인트 앤드루스GC(스코틀랜드) = 김흥구 기자 -

<>.이곳시간 23일 오후 7시45분(한국시간 24일 새벽 3시45분)끝난
제124회 영국오픈은 메이저대회사상 가장 드라머틱한 순간이 많았던
대회였다.

숨막히는 반전과 반전이 거듭된 이번대회를 장면별로 구성해 본다.

결론부터 말하면 존 데일리(29.미국)의 연장 우승이다.

<>장면 (1)

정규 4라운드 17번홀(일명 로드홀,파4,461야드).

존 데일리의 세컨드샷은 결코 로드벙커를 피하지 못했다.

피하지 못했을뿐만 아니라 그의 볼은 그린쪽 벽에 불과 30cm 차이로
붙어 버렸다.

"죽느냐, 사느냐"의 선택. 여기서 데일리는 그의 키만한 벽을 넘기며
온그린 시켰다.

보기에는 온그린이 불가능한 것 같았는데 그게 올라간 것.

그걸 올려 3온2퍼트, 보기를 한 것도 데일리로서는 다행중 다행.

이 보기로 데일리는 중간합계 7언더파에서 6언더파가 되며 2위권과의
마진이 1타차로 줄어 들었다.

<>장면 (2)

역시 로드홀.

마지막조인 코스탄티노 로카(37,이탈리아)의 세컨드샷은 그린을 넘어
아스팔트형태의 길위에 멈춰섰다.

이상황 역시 보기가 최선으로 보였다.

그러나 로카는 퍼터로 볼을 띄우는 "기술"을 과시했다.

볼은 러프로 된 등성이를 붕 떠서 넘어가며 홀컵 1.2m에 붙었다.

황금같은 파. 극히 보기드문 "기술샷"으로 로카는 중간합계 5언더파를
유지, 데일리와 여전히 1타차였다.

<>장면 (3)

두고 두고 회자될 하이라이트는 최종 18번홀(파4,354야드)에서 마치
기적과 같이 연출됐다.

데일리는 안전하게 1번아이언으로 티샷, 2온2퍼트로 파를 잡은후
클럽하우스에서 기다리는 상황.

1타차의 로카로서는 무조건 드라이버로 질러야 했다.

18번홀은 3라운드까지 평균스코어가 3.69타로 18개홀중 가장 쉬운 홀.

18번홀 그린은 1번홀 티잉그라운드 바로 옆으로 벙커등 장애물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마음놓고 질러대는 홀이고 원온이 자주 나오는
홀이었다.

로카의 티샷은 그린 못미쳐 핀에서 약 25m 전방에 멈춰섰다.

물론 버디가능성이 극히 높은 자리였다.

여기서 로카는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로카의 세컨드샷은 믿기지 않게도 뒤땅이 됐다.

메이저대회, 그것도 "우승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뒤땅이라니. 볼은
10여m나가는데 그쳤고 홀컵까지는 12m나 남았다.

암흑과 같은, 아쉬움의 탄성이 클럽하우스주변을 울렸고 모두가
99.99% 데일리의 우승이 결정된 것으로 믿었다.

로카의 12m퍼트는 죄악의 계곡(그린전방 깊은 구릉의 별칭)을 타고
올라가야 하는 극히 난해한 퍼트였다.

그러나, 그러나 골프는 어떤 상황에서도 "알수 없는 결과"를 제공한다.

로카는 그 0.01%의 틈새를 파고 들었다.

숫자로 퍼센티지를 "표시"했지만 "뒤땅후의 퍼트", 그것도 언덕을
넘어 비스듬히 돌아들어가야 하는 버디퍼트가 홀인될 줄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 버디퍼트가 홀에 떨어지자 로카는 감정을 이기지 못하는듯 엎드려
울었다.

관중들이나 기자들도 그 모두가 로카의 기막힌 반전에 할말을 잃었다.

글쎄, 그런 장면은 몇십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 장면이 아닐까.

로카는 기적과 같이 합계6언더파가 되며 데일리와 4홀연장전에 돌입
했다.

<>장면 (4)

영국오픈 특유의 4홀연장전은 1번홀,2번홀,17번홀,18번홀의 순서로
거행됐다.

4홀합계로 승부를 가리는 것. 연장전은 데일리의 일방독주였다.

가슴이 두근거린 로카는 1번홀부터 3퍼트 보기를 했고 로드홀에서는
트리플보기였다.

로카는 로드벙커에서의 벙커샷이 두번이나 볼이 벽맞고 떨어지며
5온2퍼트를 했다.

반면 데일리는 2번홀의 10m버디에 나머지홀이 전부 파로 1언더. 로카는
18번홀 버디에도 불구, 3오버였다.

그것으로 드라머는 마감됐다.

<>.데일리는 91년 USPGA대회에서의 "신데렐라적 우승"이후 이번으로
메이저 2승째를 따냈다.

최종라운드 스코어는 버디3, 보기2개로 1언더파 71타(33~38)였고
4라운드합계는 6언더파 282타.총상금 125만 파운드중 우승상금은
12만5,000파운드(약 1억5,000만원)이다.

반면 로카의 4라운드스코어는 버디2, 보기3으로 1오버파 73타(38~35)
였다.

이날 경기는 시속 40km 이상의 거센 바람이 휘몰아 치는 가운데
선수들이 악전고투, 평균스코어가 74.25타나 됐고 언더파 스코어를 낸
선수는 17명에 불과했다.

데일리의 우승으로 미국은 89년 마크 캘커베카아의 연장우승이후
6년만에 영국오픈을 탈환하는 한편 금년 3개의 메이저를 모두 석권하는
쾌거를 이룩했다.

"로카의 18번홀 퍼트에 가슴이 덜컥했지만 놀라지는 않았다.

워낙 미치는 해프닝이 많이 일어나는게 골프 아닌가.

길고 긴 하루였고 91년PGA우승보다 솔직히 더 기쁘다"

데일리가 우승할지 과연 누가 알았겠는가.

(한국경제신문 1995년 7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