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30년 토지 이용료 3만7천800원 제시
한전 "보상 규정 없으니 소송해서 받아라"
땅 주인 "농사 손실과 세금은 돌려줘야"
남의 땅에 전봇대 설치한 KT·한전…"보상은 날강도" 논란
KT가 무려 30년 가까이 남의 땅에 전봇대를 설치해 재산 피해를 주고도 보상금은 한달치 휴대전화 요금도 안 되는 금액을 제시해 땅 주인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

또 한국전력공사도 KT의 전봇대 옆에 18년간 자사의 전봇대를 박아놓아 역시 개인에게 재산 피해를 주었으나 아예 보상을 못 해주겠다고 배짱을 부리는 믿기 어려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2일 연합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KT는 1994년부터 경상북도 영덕군 영덕읍 화수리 일대 사유지에 통신용 전봇대 3개를 설치해 두었다.

한전은 2005년부터 같은 곳에 송전용 전봇대 2개를 심어놓았다.

KT와 한전의 전봇대가 설치된 땅은 바닥이 콘크리트로 포장돼 도로로 편입됐는데 면적이 660㎡가 넘는다고 한다.

이들 땅은 A씨 부모가 소유하다 2017년 A씨 형제들에게 상속한 곳이다.

서울과 경기, 울산 등지에 흩어져 살고 있는 A씨 형제들은 소유한 땅을 다른 사람이 농사를 짓도록 빌려주고 이용료를 받아왔다.

그런데 얼마 전 임차인으로부터 빌린 토지가 계약 면적보다 작은 것 같다는 얘기를 듣고 측량하면서 KT와 한전의 전봇대가 자신들의 토지에 세워져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한다.

A씨 형제는 KT와 한전에 문제를 제기해 지난 달 16일께 양사의 전봇대들은 모두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KT와 한전의 보상 규정이었다.

KT는 전봇대 1개당 점유한 토지 면적 0.03㎡에 공시지가(㎡당 4만2천원)와 연 5% 이율, 10년의 사용기간을 곱한 3만7천800원의 보상금을 줄 수 있다고 밝혔다.

KT는 토지 이용료 보상은 최대 10년까지만 해주도록 규정돼 있어 30년 치를 보상해줄 수 없다고 못 박았다.

A씨 형제들은 한 달 휴대전화 요금으로 몇만원씩 징수하는 KT가 30년간 남의 토지에 전봇대를 박아 거액의 수익을 창출하고도 4만원이 안 되는 돈만 보상해주겠다는 것은 날강도나 마찬가지라고 분통을 터트리고 있다.
남의 땅에 전봇대 설치한 KT·한전…"보상은 날강도" 논란
한전의 입장은 더 황당하다.

한전은 전기사업법에 따라 사유지에 협의를 거쳐 전봇대를 설치할 수 있지만 보상 규정은 없어 A씨 형제들에게 전봇대 설치에 따른 보상을 한 푼도 해줄 수 없다고 밝혔다.

보상받고 싶으면 소송을 걸라고 말한다.

KT와 한전은 또 어떻게 사유지에 전봇대를 설치하게 됐는지 근거 자료도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사실상 사유지를 무단으로 점유한 거나 마찬가지라는 지적도 나온다.

A씨는 "형제들이 먹고살기 바빠 우리 땅에 KT와 한전의 전봇대가 설치된 것도 몰랐다.

전봇대 때문에 생산하지 못한 벼가 금액으로 연간 100만원이 넘고 토지에 대한 세금도 매년 적지 않은 금액을 냈다.

그런데 말도 안 되는 보상 규정을 들이대 너무 억울하고 화가 난다"고 말했다.

KT는 "규정에 따라 일을 진행했으며 구체적인 내용은 더 말해주기 힘들다"고 밝혔다.
남의 땅에 전봇대 설치한 KT·한전…"보상은 날강도" 논란
한전은 언론 취재 후 입장이 조금 바뀌었다.

한전 관계자는 "A씨의 토지 측량비는 처음부터 보상해주기로 했지만, 전봇대 사용에 대한 보상은 규정이 없다"면서도 "정부와 협의해서 보상 방안을 마련해 보겠다"고 밝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