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판 떨어지고 철골 휘어…잿더미도 날려 전쟁터 방불케 해
폭격 맞은 듯한 인천 현대시장…뛰쳐나온 상인들 망연자실
"가게가 다 불에 타버렸습니다.

이제 장사를 어떻게 할지 걱정이 태산입니다.

"
밤사이 방화로 점포 205곳 중 55곳이 잿더미로 변한 인천 현대시장.
5일 오전 시장 입구에 들어서자 매캐한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화재 진화 후 바닥에 쌓인 검은 재는 시장 골목을 걸을 때마다 신발 사이로 날렸다.

골목을 따라 양옆에 2열로 쭉 늘어선 가게들은 마치 전쟁터에서 폭격을 맞은 듯한 모습이었다.

평소 손님을 끄는 가게 간판은 형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다 떨어져 나갔고, 점포 철골 구조물도 엿가락처럼 휘거나 곳곳이 끊어졌다.

가게 안에 쌓아 둔 야채나 생필품은 모두 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가게마다 유리창은 대부분 깨져 있었으며 한낮인데도 전기가 끊겨 어두컴컴했다.

박기현 현대시장 상인연합회장은 "집에서 자다가 자정쯤 (불이 났다는) 연락을 받고 뛰쳐나왔다"며 "나오자마자 인명피해부터 확인했는데 가게에서 잠을 자던 일부 상인들은 다행히 다 대피한 상황이었다"고 기억했다.

그는 "(방화범이) 처음 불을 지른 그릇 가게에 플라스틱 제품이 많다 보니 유독가스가 뿜어져 나왔고, 냄새를 맡고 금방 대피해 인명피해가 없었던 것 같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폭격 맞은 듯한 인천 현대시장…뛰쳐나온 상인들 망연자실
한밤에 잠옷 차림으로 시장에 나온 다른 상인들은 화마가 삼킨 가게를 코앞에서 보고도 손을 쓸 수 없었다.

매일 구석구석을 쓸고 닦으며 지킨 점포가 검은 연기에 휩싸여 불기둥 속에 무너져 내려도 속수무책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박 회장은 "건물 철골 구조물이 와장창하고 떨어졌고 여기저기서 깨지고 부서지는 소리가 계속 났다"며 "시장 안에 LPG 가스통도 많아 굉장히 위험했다"고 말했다.

상인 호우현(77)씨도 "(현대시장 안에 있는) 원예상가 쪽에서 시뻘건 불길이 올라오고 무언가가 터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며 "내 가게는 괜찮은지 들어가 보고 싶었지만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와 입구 앞에서 발만 동동 굴렀다"고 울먹였다.

화재 10시간 만에 방화범이 잡혔다는 소식을 들은 상인들은 평소 술에 취해 시장에서 자주 소란을 부린 사람으로 기억했다.

상인 김모(64)씨는 "시장에 왔다 갔다 하던 사람"이라며 "며칠 전에도 술을 마시고 출동한 경찰관과 싸웠다는 말을 들었다"고 떠올렸다.

이어 "(상인들 사이에서는 불이 난) 어제 방화범이 가게에서 술을 달라고 했는데 안 주니깐 성질을 내면서 나갔고 이후 다시 시장에 와서 불을 질렀다는 이야기도 있다"고 전했다.

폭격 맞은 듯한 인천 현대시장…뛰쳐나온 상인들 망연자실
현대시장 상인들은 언제쯤 정상적으로 장사를 다시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며 불안해했다.

한 상인은 이날 오전 화재 현장을 찾은 유정복 인천시장에게 "가장 시급한 부분이 전기"라며 "(전기가 끊겨) 냉동·냉장 식품이 다 망가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유 시장은 "생업에 지장이 없도록 임시로 영업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겠다"며 "전기 공급도 관계 기관과 협의해 조치하겠다"고 약속했다.

인천시는 현대시장을 시설현대화 사업 우선 지원대상으로 선정하고, 점포당 최대 7천만원의 긴급 경영안정 자금을 지원하는 방안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행정안전부도 현대시장 화재 피해 복구와 안전조치를 위해 특별교부세 10억원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경찰은 일반건조물방화 혐의로 40대 용의자 A씨를 긴급체포했으며 범행 동기를 확인한 뒤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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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