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관들, 주민이 발견 신고한 시신 은폐하고 수사 요청도 묵살
법원, 김현정 양 유족 국가배상청구 일부 인용…"경찰의 위법행위"

연쇄살인범 이춘재에게 살해당한 경기 화성 초등학생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가 법원에서 일부 받아들여지면서 당시 경찰의 엉터리 수사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국가 배상 판결로 다시 주목받는 '이춘재 연쇄살인' 엉터리 수사
17일 경찰에 따르면 '화성 초등생 실종사건'은 1989년 7월 7일 낮 12시 30분께 화성 태안읍에서 초등학교 2학년생이던 김현정(당시 8세) 양이 학교 수업을 마치고 귀가하다가 사라진 사건이다.

김양이 실종된 뒤 5개월 가까이 수사에 별다른 진전이 없었는데, 같은 해 12월 21일 지역주민들로부터 "야산에서 줄넘기에 결박된 양손 뼈를 발견했다"는 신고가 경찰에 접수됐다.

그러나 당시 담당 경찰관이던 형사계장 A씨와 형사 B씨는 이를 유족에게 알리지 않고, 오히려 김양의 시신을 은닉했다.

이들은 앞서 김양의 아버지 고 김용복(2022년 9월 사망) 씨의 두 차례 수사 요청도 묵살한 상태였다.

사건은 결국 1990년 8월 단순 가출 사건으로 종결됐다.

이에 따라 김양은 '가출인'으로 분류돼 왔다.

멀쩡히 학교에 다니던 만 8세 여자아이가 감쪽같이 사라진 데다가 범죄 피해 의심점이 상당한데도 마치 스스로 집을 나간 사람처럼 둔갑시킨 것이다.

이 사건은 '콜드 케이스(장기 미제)'로 30년간 경찰서 캐비닛에 들어 있다가 이춘재의 자백이 나온 2019년 실체적 진실이 밝혀졌다.

이춘재는 사건 재수사 과정에서 김양과 관련해 "그냥 살기 싫다는 생각이 들어서 자살하려고 야산에 올라갔는데, 한 어린이가 지나가길래 몇 마디 대화하다가 일을 저질렀다"며 "목을 매려고 들고 간 줄넘기로 어린이의 양 손목을 묶고 범행했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재수사 과정에서 이처럼 이춘재의 진술이 김양 실종 당시 지역주민 진술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또 A씨 등이 시신 발견 신고 나흘 뒤인 1989년 12월 25일 김씨를 비롯한 가족들을 참고인으로 불러 조사하면서 줄넘기에 대해 질문한 점이 확인되고, 유류품 등을 발견한 사실을 알리지 않은 점 등에 미뤄 A씨 등에게 혐의가 인정된다고 판단해 사체은닉 및 증거인멸 등 혐의로 입건했다.

A씨 등 해당 경찰관들의 김양 시신 은닉 및 사건 은폐 등 범행 시점은 1989년 12월 21일∼25일 사이로 추정됐고, 구체적인 시신 은닉 수법 등은 파악되지 않았다.

다만 이들은 공소시효 만료로 형사 처벌을 받지 않았다.

국가 배상 판결로 다시 주목받는 '이춘재 연쇄살인' 엉터리 수사
A씨 등의 범행 동기는 밝혀진 바 없다.

다만, 당시 이 일대에서 발생한 연쇄살인사건 범인의 흔적조차 찾지 못하던 상황에서 또 다른 살인 사건이 발생하자 심적 부담을 갖게 된 것 아니었겠느냐는 추측만 나왔을 뿐이다.

A씨는 이춘재 사건 재심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 이 사건에 대해 ""금시초문이다.

(이춘재 사건 재수사를 한) 경찰이 짜 맞추기 수사를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김양의 유족은 2020년 3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유족 측은 "당시 담당 경찰관들의 위법 행위로 유족은 피해자의 생사조차 모른 채 긴 세월을 보내야 했다"고 밝혔다.

법원은 소송 제기 2년 8개월여 만인 이날 김양 유족 측의 손을 들어줬다.

수원지법 민사15부는 "피고 대한민국이 원고인 김양 유족에게 2억2천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하면서 "경찰의 위법 행위로 유족은 피해자인 김모(당시 8세) 양을 애도하고 추모할 권리, 사망 원인에 대해 알 권리 등 인격적 법익을 침해당했다"고 판시했다.

또 "국가는 유족에게 정신적 손해에 따른 위자료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