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 2018년 당시 소수의견 추종…논란 확산할 듯
갑자기 선고일 사흘 앞당겨…"법정 평온·안정 위해"


대법원에서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배상 판결을 확정한 지 2년 8개월 만에 다시 이를 뒤집는 1심 판결이 나와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됐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4부(김양호 부장판사)는 7일 강제징용 피해자 85명이 일본제철·닛산화학·미쓰비시중공업 등 일본 기업 16곳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각하했다.

이는 앞서 2018년 10월 선고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과 정면 배치된다.
13년 걸린 강제징용 대법 판결, 2년8개월만에 뒤집혀
◇ 판례 세우는 데 13년 걸렸는데 2년 8개월 만에 뒤집어

재판부는 "이번 판결은 다른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기업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인 2018년 10월 30일 선고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의 소수 의견과 결론적으로 동일하다"고 설명했다.

재판부가 언급한 전원합의체 판결은 여운택·신천수·이춘식·김규식 할아버지가 일본제철(옛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소송의 재상고심 판결로, 대법원은 "원고 1인당 1억원씩 배상하라"며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하지만 당시 권순일·조재연 대법관은 "(한일) 청구권 협정에 따라 피해자들의 배상 청구권이 제한되는 것으로 봐야 하므로 (일본 기업이 아닌) 대한민국이 피해자에 대해 정당하게 보상해야 한다"는 반대 의견을 냈다.

이들의 의견이 재판부가 이날 각하 판결과 동일한 취지라고 언급한 전원합의체 판결의 소수 의견이다.

당시 사건 피해자들은 2005년 국내 법원에서 소송을 내 1·2심에서 패소했다가 2012년 대법원에서 승소 취지 파기환송 판결을 받았고, 파기환송심을 거쳐 2018년 10월에야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승소 판결을 확정받았다.

이 확정 판결은 국내 법원에서만 13년이 걸렸고 그 과정에서 박근혜 정부와 양승태 사법부의 '재판 거래' 의혹이 불거지는 등 극심한 진통을 낳았다.
13년 걸린 강제징용 대법 판결, 2년8개월만에 뒤집혀
◇ '하급심 반란' 논란 불가피…법원 "이렇게 판결할 수밖에"

하급심 재판부가 대법원 판례와 반대 취지 판결을 선고하는 사례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유죄 판결이 확정됐음에도 일선 판사들이 잇달아 무죄를 선고한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다.

양심적 병역거부는 병역법 위반이라는 대법원 판례가 확립돼 있었지만, 일선 판사들이 꾸준히 무죄를 선고하고 위헌법률 심판을 제청한 것이다.

잇단 무죄 판결이 밑거름 역할을 해 헌법재판소는 2018년 6월 위헌법률 심판에서 일부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대체복무제가 규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처벌하는 현행법이 헌법에 어긋난다는 결정이 나온 것이다.

하지만 이번 강제징용 사건 판결은 같은 취지의 소송을 통해 이미 13년 동안 1·2·3심과 파기환송심, 재상고심 등 5차례의 재판을 거쳐 판례를 세운 지 2년 8개월 만에 정반대로 뒤집은 만큼 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도 논란을 예상한 듯 당초 오는 10일로 예정했던 선고기일을 이날로 급히 앞당겨 선고했다.

그러면서 "선고기일 변경은 당사자에게 고지하지 않아도 위법하지 않다"며 "법정의 평온과 안정 등 제반 사정을 고려해 선고 기일을 변경했다"는 논리를 폈다.

예정대로 선고를 진행해 당사자들과 취재진 등이 대거 법정에 몰려들면 법정의 평온이나 안정을 해칠 우려가 있다고 판단해 재판부가 급하게 선고 기일을 앞당겼다는 의미다.

재판부는 이번 판결에 대해 "법원은 헌법기관으로서 헌법과 국가 그리고 주권자인 국민을 수호하기 위해 이같이 판결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