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개입' 임성근 무죄-이규진 유죄…판단 엇갈려
'직권남용' 판단, 향후 양승태 재판에서도 쟁점될 듯
"법원행정처, 재판개입 직권 있어…직권남용 처벌 대상"
법원이 전직 판사들의 '재판 개입' 혐의를 유죄로 본 판결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사법부 수뇌부와의 범행 공모를 인정한 것이다.

특히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으로부터 부당한 재판개입에 관한 '지시'를 받고 이행한 것이지만 직권남용죄를 적용받아 향후 항소심에서 법리 다툼이 예상된다.

24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2부(윤종섭 부장판사)는 전날 이 전 상임위원에게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죄를 적용해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그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해산된 옛 통합진보당 지방의회 의원들의 지위 확인 소송 재판에 개입하고, 파견 법관들을 동원해 헌재 내부 정보를 수집한 혐의를 받고 있다.

재판부는 "헌법·법원조직법·법원사무기구규칙·각종 예규를 모두 살펴봐도 법원행정처가 특정 사건의 재판사무 핵심에 관해 담당 판사의 잘못을 지적하는 사무를 수행할 수 있다는 명문 규정은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법과 제도를 종합적·실질적으로 관찰하면 헌법 27조·103조, 법원조직법 9조 1항과 19조 2항, 법원사무기구규칙, 기타 예규 등의 해석상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가 특정 사건의 재판사무 핵심영역에 대한 '지적 사무'를 수행할 수 있다"고 했다.

이는 일선 법원장이나 법관과 달리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가 개별 재판의 잘못을 지적할 권한이 있기 때문에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의 부당한 재판 개입에 관여한 경우 직권남용죄가 성립한다는 것이다.

결국 이 전 상임위원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의 지시를 받아 재판에 개입함으로써 직권남용죄가 적용된 것으로 해석된다.

"법원행정처, 재판개입 직권 있어…직권남용 처벌 대상"
앞서 임성근 전 부산고법 부장판사는 산케이 전 서울지국장의 박근혜 전 대통령 명예훼손 사건 등 재판에 개입한 혐의로 기소됐으나 '직권 없이는 직권남용도 없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받았다.

하지만 이 전 상임위원의 사건을 심리한 재판부는 법원행정처가 판사의 재판에 대해 지적할 수 있는 권한이 있어 이 전 상임위원에게도 직권남용죄의 전제가 되는 '직권'이 존재한다고 본 것이다.

다만 재판에 관해 지적을 할 수 있는 주체는 판사들의 근무 평정을 할 수 있는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 처장·차장으로 제한돼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이나 대법원 양형위 상임위원은 해당 사무의 직접적인 주체는 될 수 없다고 전제했다.

결국 대법원장이나 법원행정처 처장·차장과의 공모 관계가 인정되는 경우 재판 개입을 직권남용죄로 처벌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낸 것이어서 향후 재판에서 법리 다툼을 낳을 불씨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함께 기소된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은 공모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등의 이유로 재판개입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받았다.

하지만 그는 일선 법원의 공보판사를 통해 국민의당 국회의원이 기소된 형사재판 재판부 심증을 파악하려 했고, 법관들의 연구 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의 와해를 시도한 혐의가 유죄로 인정됐다.

재판부는 이 전 실장이 일선 공보관과 법관 연구 모임에 개입할 직권이 있다고 인정했다.

아울러 이 전 실장이 국제인권법연구회의 와해를 시도하는 과정에도 양 전 대법원장과 임 전 차장과 공모한 것으로 판단했다.

이번 판결은 향후 항소심은 물론 1심 판결을 앞둔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재판에서도 재판부 판단의 적절성을 놓고 법리 공방이 치열할 것으로 보인다.

기존에 없던 새로운 법리인 만큼 '범죄와 형벌은 미리 법률로 규정돼야 한다'는 죄형법정주의에 부합하는지도 논란거리다.

재판부도 논란을 예상한 듯 "법과 제도는 일순간에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 상당한 기간에 점진적으로 변화한다"며 "법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법원은 변화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죄는 법과 제도가 크게 변화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법과 제도가 자리 잡는 기간에 문제된 경우가 많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