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파견' 판결 확산하는 가운데 이례적으로 회사 승소
사내ㆍ외 법률 전문가와 현장 실무자 간 협업이 비결
조선업종 사내도급 기준될지…대법 판결에 주목
법원의 불법 파견 판결이 계속 확대되는 가운데 일반적으로 ‘직영’이라고 불리는 원청업체와 '협력업체'로 불리는 하청업체가 함께 선박을 조립하는 조선업체의 생산방식은 불법 파견이 아니라 적법한 도급계약에 해당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지난 13일 부산고등법원의 현대중공업 사건 판결에서다.

최근의 법원 판결 경향과는 달리 회사 측이 이례적으로 승소한 이유로는 현대중공업 사내 법무팀, 현장 실무자, 노동법 전문 변호사 사이에 긴밀하게 협업이 이뤄졌다는 점이 꼽힌다. 조선업체 작업 현장의 특수성을 자세히 조사한 다음 재판부에 효과적으로 제시했다는 것이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법률원과 법무법인 태평양이 각각 근로자 측과 회사 측 소송 대리를 맡아 치열한 법리 공방을 벌인 결과다. 이번 사건을 통해 앞으로 불법 파견 소송에서 기업들이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시사점이 적지 않아 보인다. 판결 내용을 입수해 상세히 분석했다.
현대重 최신 판례로 보는 불법파견 소송과 법리

현대중공업 협력업체 소속 근로자 3명은 “형식적으로는 협력업체에 소속돼 일했지만 실제로는 원청으로부터 직·간접적으로 업무 지시를 받고, 원청 소속 근로자들과 공동으로 작업해 왔다”라며 2017년 소송을 제기했다. 근로자 파견에 해당하는 만큼 2년을 초과한 때부터 현대중공업 소속 근로자라는 주장이다.

2015년 현대차 불법 파견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례 이후 확립된 다섯 가지의 판단기준별로 근로자 측의 주장에 대한 부산고법의 결론을 조목조목 들여다보면 회사 측의 대응 논리가 주효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먼저 하청업체 소속 근로자가 ‘업무상 지휘·명령’을 원청업체에서 받았다면 도급의 범위를 벗어나 불법 파견이 된다. 현대중공업은 협력업체에 선박 설계도, 작업표준, 시공요령서를 제공했지만, 이는 일의 완성을 위한 도급인의 지시에 불과한 것이지 업무상 지휘·명령은 아니라는 게 부산고법의 판결이다. 여기서 ‘선주의 요구사항을 반영해 선박을 설계하고 그에 따른 작업을 할 수밖에 없는 조선업의 특성을 고려했다’는 취지의 판결문 문구가 눈에 띈다.

제조업체에서 주로 활용하는 ‘MES(생산관리시스템·manufacturing execution system)’라는 전산시스템을 통해 하청업체 근로자에게 작업 정보를 제공한 것을 두고 이를 ‘업무 지시’로 봐서 불법 파견으로 판결한 2019년의 광주고등법원의 현대제철 사건과는 대조적이다. 작업 현장의 특성과 하청업체에 전달되는 작업 정보의 성격을 재판부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정반대의 결론이 나왔다.
현대重 최신 판례로 보는 불법파견 소송과 법리

협력업체의 업무가 원청업체 사업에 실질적으로 편입됐는지 여부를 놓고도 근로자 측은 원청과 하청업체 소속 근로자들이 밀접한 공간에서 작업했다고 주장했다. 부산고법은 “블록을 조립하는 선박 건조 과정에서 일부 동일한 공간에서 작업하는 경우가 있더라도 작업 대상과 작업 내용이 서로 다르다”고 지적하며 “하자가 발생한 경우 책임을 구분하기 위해 직영과 협력업체 소속 근로자들의 작업 구역을 명백해 구분했다”고 판단했다. 역시 선박 건조 과정의 특수성에 대해 재판부가 충분히 이해한 것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인사·노무 관리에 있어 원청업체가 결정권을 행사했는지의 판단기준을 놓고 근로자 측은 작업 인원과 휴일 근무자까지 원청업체가 파악하고 관리했다고 주장했지만, 부산고법은 회사 측 주장에 힘을 실었다. “협력업체 소속 근로자들에 대해서도 산업재해 예방을 위해서 작업 현장의 인원 파악을 할 필요가 있다”고 판결한 대목에서다.

하도급 업체가 수행하는 업무가 원청업체의 업무와 구별되는지 여부와 전문성과 기술성을 갖추고 있는지의 쟁점에 대해서도 회사 측 손을 들어 줬다. 원청은 협력업체와 취부·사상·용접 업무 등을 놓고 개별 계약을 체결했고 이들 업무는 원청업체 업무와도 구분이 가능하다고 봤다. 또 도급계약을 체결할 때 협력업체가 취부·용접 등 자격증 소지자를 채용하는 등 공사수행능력이 충분히 있는지도 확인했다는 점도 고려했다.
도급-파견 구분 어려워... 현장 작업 내용을 세세히 파악할 필요
마지막은 협력업체가 독립적인 기업 조직과 설비를 갖췄는지에 관한 판단이다. 근로자 측은 전기 장비나 용접 장비, 용접봉 등 재료를 원청이 제공했다는 점을 지적했지만, 부산고법은 ‘품질관리와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조치’라는 회사 측 주장을 받아들였다. 일부 장비나 자재를 원청이 제공하더라도 협력업체의 독립성을 전적으로 부정할 수는 없다는 의미다.

“회사 내 법무팀 전문가도 현장 업무의 세부적인 특성은 놓치는 경우가 많고 불법 파견 사건은 판단 기준도 불명확해 소송 수행에 어려움이 많다”는 게 사건을 담당한 김상민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의 토로다. 김 변호사는 “사내도급, 근로자 파견 모두 3자 간 법률관계여서 구분이 여간 어렵지 않다”라며 “당초 파견법이 도입 취지와는 달리 사내도급을 규제하는데 사용되는 것이 근본 문제”라고 지적했다.

자동차 업종을 비롯한 제조업, 대형마트 등 유통업까지 확산하는 불법 파견 소송에서 기업들에 불리한 판결이 이어지는 중에 나온 터여서 이번 현대중공업 판결이 더욱 눈에 띈다고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대법원의 최종 결론에 관심이 모아진다.
최종석 전문위원 js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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