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몽 수교 30주년 행사 무산된 게 아쉬운 몽골 이주 여성

"사람 사는 곳은 어디라도 똑같더라고요.

한국이나 몽골이나 어려운 친인척과 이웃을 서로 돕는 것은 다 같은 모습입니다.

"
11일 연합뉴스와 만난 몽골이 고향인 이나윤(몽골명 자르갈마)씨는 서로 돕는 풍습은 두 나라가 같다면서 이렇게 표현했다.

"어려운 처지 서로 돕는 것은 한국과 몽골 똑같아"

올해로 수교한 지 30년째를 맞는 두 나라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탓에 여느 때와 달리 풍성한 기념행사를 하지 못한 게 아쉽다고 이 씨는 안타까워했다.

몽골 대학에 게시된 한국 교환 학생 공고를 보고 한국 유학을 결심해 19살이던 1996년 경희대 한국어학당에 온 그는 부모가 일찍 돌아가신 탓에 큰오빠로부터 대학 3년간 학비를 지원받았다.

1998년 한국외국어대 경제학과에 입학한 그는 학비와 생활비를 조달하느라 각종 아르바이트를 해야만 했다.

몽골에서 한국으로 유학하러 올 형편이라면 '공주'급이 아니냐는 추측이 소문으로 번져 졸지에 '몽골 공주'가 됐으나 그가 아르바이트하며 생활비를 조달하는 어려운 처지를 알고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교수님들이 한 달 치 월세 금액과 맞먹는 전공 교재를 건네주는가 하면 동기들과 복학생들이 밥도 자주 사줬다"면서 "남편도 밥 잘 사주는 사람 중의 하나였다"고 전했다.

1999년 여름 장마로 학교 앞 반지하 방에서 물이 찼을 때 집 주인이 알선해 동사무소에서 지원금 90만원과 라면, 취사도구를 지원받은 게 당시에 큰 힘이 됐다고 술회했다.

그는 어느 정도 한국어에 능통해지자 통번역 아르바이트 수입이 쏠쏠해 생활에 큰 도움이 됐고 무사히 졸업해 몽골에서 지내면서 대학원 진학을 결심했다.

그때 군 복무를 마친 같은 학교 러시아어과 출신의 남편이 몽골에 여행왔다며 찾아왔다.

나중에 '왜 내게 잘해주냐'고 물었더니 '좋아하니까'라고 답한 게 전부"였다며 "아마도 여행이 아니라 나를 보러 왔을 것"이라고 이씨는 말했다.

"어려운 처지 서로 돕는 것은 한국과 몽골 똑같아"

이 씨는 몽골에 있던 언니가 사망하면서 자식을 부탁한다고 한 말을 기억해 여자 조카의 한국 유학 학비를 책임졌다.

"이모나 삼촌이 조카들을, 형과 언니가 동생들을 책임지는 것은 한국이나 몽골이나 같은 모습"이라면서 "서양인들이라면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30년과 앞으로 30년을 비교해달라고 하자 "처음 왔을 때 한국 내 몽골인인 50명도 채 안 됐지만, 지금은 거의 1천배인 4만5천명으로 늘었고 몽골 현지 사람들은 ''메이드 인 코리아'를 입고 죽는 게 소원'이라고 한다"고 전했다.

이어 "수교 초창기에 두 나라 국민은 양국이 어디에 있는지도 잘 모르는 상태였고 양국을 오가는 항공편은 텅 비었지만, 이제는 만석을 이룰 정도로 이웃처럼 바뀌었으니 양 국민이 비자 없이 드나들면 관계가 격상될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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