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사범' 황하나·박유천·정석원 환골탈태 선언…우리는 그들에게 선행을 기대하는가
"다시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고 선행하며 살겠습니다." (황하나)

"앞으로 사회에 많이 봉사하면서 열심히 정직하게 노력하겠습니다." (박유천)

"앞으로 가정에 충실하고 반성하며 많은 사람을 도와주고 살겠습니다." (정석원)


마약 혐의로 구속기소 된 남양유업 창업주 외손녀 황하나(31) 씨가 19일 1심 법원에서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구치소를 나와 자유의 몸이 된 황씨는 판결을 내린 재판부에도 또 구치소 직원들에게도 인사를 하며 깍듯한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앞서 풀려난 전 연인 가수 겸 배우 박유천 또한 지난 2일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아 구치소에서 풀려나면서 눈물을 글썽이며 참회했다.

황씨가 자신을 마약 공범으로 지목하자 기자회견까지 자청해가며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던 박씨는 구속영장이 발부돼 수감된 이후 "마약 성분이 내 몸에 어떻게 들어갔는지 모르겠다"면서 국과수 검사를 부인하더니 "나를 내려놓기 두려웠다"면서 투약 사실을 자백해 연예계에 길이 남을 역대급 흑역사를 완성했다.

박 씨는 지난 2월과 3월 옛 연인 황 씨와 함께 3차례에 걸쳐 필로폰 1.5g을 구매하고, 6차례에 걸쳐 투약한 혐의로 기소됐다. 또 자신의 오피스텔에서 필로폰을 1차례 투약한 혐의도 인정됐다.

그는 구치소 앞에 자신을 응원하러 나온 수많은 팬들 앞에서 "많은 분들께 정말 심려 끼쳐 드린 거 진심으로 다시 한번 사과드리고 싶다. 앞으로 사회에 많이 봉사하면서 열심히 정직하게 노력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황씨가 1심에서 집행유예를 받은 이날 필로폰과 코카인 등의 마약을 투약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배우 정석원의 항소심도 열렸다. 그는 가수 백지영의 남편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정씨는 항소심 공판에서 "앞으로 가정에 충실하고 반성하며 많은 사람을 도와주고 살겠다"라며 선처를 부탁했다.

그는 지난해 2월 초 호주 멜버른의 한 클럽에서 필로폰과 코카인을 투약한 혐의로 경찰에 긴급체포됐다. 경찰 조사결과 그는 고등학교 동창인 한국계 호주인 등과 함께 마약을 투약한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콘서트를 앞두고 있었던 백지영은 팬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일정을 강행하면서 무대위에서 대리사과의 눈물을 쏟았다.

마약사범인 박유천에 이어 황하나가 모두 집행유예로 풀려나자 국민들은 "마약을 해도 집행유예로 내보내 주는 건 국민들에게 한 번 쯤은 마약을 해도 된다고 합법화를 선언하는 꼴이다"라고 분노했다.

아울러 "돈있는 재벌에겐 마약 합법, 돈없는 서민들은 불법인가", "마약을 다른 사람에게 팔기도 했는데 일반인이었으면 과연 집행유예로 끝났을까", "마약 투약에 이렇게 관대하다니", "앞으로 일반인들도 마약하면 풀어줘라. 법이 일관성이 있어야지"라고 강도높게 비난했다.

수원지법 형사1단독 이원석 판사는 황씨에 대한 판결문을 읽으며 “집행유예 기간이 끝난 이후더라도 다시 마약류 범죄를 저지르면 어느 재판부가 됐든 실형을 선고할 것”이라며 “다시는 이런 범죄를 저지르지 말라”고 충고했다.

앞서 박씨에게 집행유예 판결을 내린 재판부는 "마약류 범죄는 중독성과 개인적, 사회적 폐해가 심각해 엄히 처벌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피고인이 범행을 반성하고 초범인 점 등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일반적으로 초범의 경우 재판은 처벌이 아닌 교화에 그 목적이 있다. 그리고 반성의 유무가 교화의 기준이 되기 때문에 양형에 그만큼 반영이 된다.

법적 근거에 따라 재판부가 황씨, 박씨에게 집행유예 판결을 내린 것임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이 "솜방망이 처벌이다"라며 분노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배경에는 사법부에 대한 불신과 경찰 공권력에 대한 유착 의혹이 말끔히 해소되지 않았다는 의식이 저변에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다.

"경찰청장이 아빠 베프"라던 재벌가 창업주 외손녀의 오만방자한 말이 허풍으로 드러났다고는 하지만 우리사회 어딘가에 아직도 소위 말하는 '빽'으로 편의를 얻어낼 수 있는 썩은 물이 있다는 걸 증명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실제 황씨가 마약 전달책으로 수사대상이 됐을 때도 경찰은 그를 단 한번도 소환해 조사조차 하지 않았으며 이에 대한 이유로 "민주노총 시위가 많아 바빠서 조사 안했다"는 핑계를 대 아연실색케 했다.

황씨는 지인에게 ‘남대문경찰서에서 제일 높은 사람과 만나고 왔다. 서장실에서 조사를 받았다. 경찰서 투어까지 하고 왔다’는 취지로 이야기를 했다. 인증사진까지 나온 마당에 할 말이 없어진 경찰은 울고 있는 황씨를 지나가던 경무과장이 보고 달래던 중 상황실을 보여달라고 해 보여준 것이라고 했다.

비판과 실소를 참지 못하게 한 이 해명은 민중의 지팡이가 때로는 민중의 '딸랑이'가 돼서 권력자들의 비위를 맞출 수 있다는 걸 확인시켜 줬다.

국민들은 마약사범인 그들에게 사회에 대한 봉사나 선행 베풀기를 기대하지 않는다. 그저 그들이 더 이상의 범죄를 저지르지 않고 각자 사회 구성원으로서 준법생활을 해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박씨와 정씨가 다시 무대에 오르건, 드라마에 출연하게 되건 그들의 진로에 대한 결정권은 본인들에게 있다. 대중의 사랑을 다시 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와는 별개의 문제다. 인플루언서로 맹위를 떨치던 황씨가 다시 SNS '팔이피플'로서의 명성을 되찾게 되더라도 그건 그 제품을 구매하는 소비자들이 선택하면 된다.

그들은 타의 모범이 돼야 하는 사회지도층이 아니다. 봉사를 하며 살아야 할 당위성도, 선행을 베풀어야 할 의무도 없다. 그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지켜야 할 법을 지키고 그것을 숨기려고 꼼수를 부리지 않는 것. 어려울지 몰라도 그것이 그들에게 요구되는 유일한 강압적 테두리다. 부당한 편의를 받았다는 의혹으로 선량하게 살아가는 국민들을 힘 빠지게 하는 것은 한 번으로 족하다.

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