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주최 이산가족 환영만찬…테이블마다 아직 상봉의 여운이"저도 (술) 요만큼도 못 먹어요, 아버지. 조금도 못 먹어요."집안 내력일까.태어나기도 전에 헤어지고서 67년 만에 처음으로 만난 아버지와 아들은 술이 약한 것도 똑 닮았다.24일 오후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 1층 대연회장. 남북 이산가족 2차 상봉행사 참가자들을 위해 열린 환영만찬에서 조정기(67)씨는 북측의 아버지 조덕용(88)씨가 술을 못한다는 이복동생 조학길(61)씨의 말에 이렇게 답했다.조씨 가족은 와인잔에 술 대신 물을 따라 "건강하세요"라고 건배했다.2차 이산가족상봉에 참여한 남측 81가족 326명은 이날 오후 7시14분부터 2시간 동안 북측 가족들과 저녁 식사를 함께하며 오랜 세월 누리지 못했던 '식구(食口)의 정'을 만끽했다.이날 오후 3시15분부터 진행됐던 단체상봉 후 2시간 만에 만찬장에서 다시 만난 가족들은 처음 강렬했던 만남의 여운이 아직 가시지 않은 모습이었다.최성택(82)씨는 만찬장에 먼저 도착한 뒤 내내 입구를 바라보며 북측의 누나 안길자(85·최성순에서 개명)씨를 기다렸다.옆에 꼭 붙어 앉은 두 사람은 서로의 등을 다정하게 쓰다듬었다.박봉임(89)씨는 만찬장에서 북측의 동생 박영환(85)씨를 만나자마자 다시 눈물을 보였다.위로하던 영환씨도 덩달아 눈시울이 붉어졌고 옆에 있던 외손녀 박경빈(19)양까지 눈물을 훔쳤다.북측의 편찬규(88)씨는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동생 찬옥(76)씨의 손을 잡으며 "건강해야 해"라고 당부했고, 휠체어에 탄 찬옥씨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긴 이산의 세월 동안 못다 전한 사연들이 테이블마다 실타래처럼 풀려나갔다.북측 리복만(85)씨와 동행한 아들 리정철(50)씨는 그동안 지켜봤던 아버지의 깊은 한을 남측의 고모와 삼촌들에게 전했다."말도 마시라요, (아버지가) 술만 마시면 울었어요.한번도 안 운 적이 없었어요.잠꼬대로는 '어머니, 어머니' 했어요."그래도 한 밥상에 둘러앉은 가족들의 분위기는 첫 단체상봉 때보다 한결 어색함이 줄고 화기애애해졌다.남측의 사촌 여동생이 북측의 피순애(86)씨에게 "언니도 막걸리 마실 수 있느냐"고 묻자 순애씨는 "못먹는 사람이 어디 있나"라고 화답해 웃음을 자아냈다.순애씨가 남측 매제 강병식(79)씨를 두고 "너무 잘나서 막 자랑하고 싶다"고 살갑게 인사를 건네자 강씨는 "자랑 좀 하세요"라며 재치있게 받았다.남측 동생들은 북측의 이부누나 리근숙(84)씨를 살뜰히 챙겼다.남동생 황보우영(69) 씨가 리씨의 양손을 물티슈로 닦아주자 여동생 황보원식(78)씨는 리씨 무릎에 냅킨을 놓아줬다.이번 2차 이산가족 상봉 행사의 환영만찬은 남측에서 준비했다.지난 20∼22일 열린 1차 이산가족 상봉 행사에서는 북측이 환영만찬을 주최했었다.이날 만찬 테이블에는 전복과 매생이죽, 해파리냉채, 삼색전, 궁중쇠고기 잡채, 메로구이, 영양찰밥, 자연송이와 쇠고기 무국, 보쌈김치, 더덕생채, 견과류 멸치볶음, 애호박과 표고송이볶음, 노각 장아찌무침, 모듬떡, 자두·골드키위·포도 등 계절과일, 수정과, 한방 소 갈비찜 등의 음식이 차려졌다.메뉴 가운데 한방 소갈비찜은 고령의 참가자들이 씹고 삼키기 편하도록 '연화식' 기술로 조리했다고 관계자는 전했다.북측 보장성원(지원인력)들은 "해파리를 이렇게 요리하느냐"고 묻고 휴대전화로 음식 사진을 찍는 등 남측이 준비한 메뉴에 높은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마실거리로는 '좋은데이' 소주와 카스 맥주, 국순당 유산균막걸리, 콜라, 사이다, 삼다수 등이 준비됐다.환영 만찬을 끝으로 이날 2차 이산가족 상봉 행사 첫날 일정은 종료됐다.상봉단은 이튿날 개별상봉과 객실 중식, 단체상봉, 마지막 날 작별상봉 및 공동 중식 등의 일정을 통해 2박 3일간 총 12시간을 함께 보낼 예정이다./연합뉴스
전쟁통에 소식 끊겨 포기하며 살았는데…北에서 찾아 상봉24일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에 진행된 남북 이산가족 단체상봉은 죽은 줄로만 알았던 가족들이 다시 만나 오열하는 모습이 곳곳에서 목격됐다.26일까지 진행되는 2차 이산가족 상봉행사는 북측의 이산가족들이 신청해 남측의 가족을 만나는 자리로, 남측 가족들은 소식이 끊긴 가족들이 사망했다 여겨 제사까지 지내다 뜻밖의 만남이 성사된 경우가 적지 않았다.남측의 목원선(85)·원구(83) 형제와 북측의 큰형 김인영(86·목원희에서 개명) 씨는 단체상봉장에서 68년 만에 감격적으로 해후했다.이들 형제는 선 채로 서로를 껴안고 얼굴을 비비며 통곡했다.원선·원구 형제는 1950년 6·25전쟁 발발 후 한 달쯤 지나 시장에 먹을거리를 사러 간 큰형이 북한군에 강제징집된 이후 사망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그래서 그간 이산상봉 신청도 하지 않았다.자리에 앉은 김인영 씨는 남녘 동생들이 가져온 생전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진을 한없이 바라봤다.남측 김유관(81) 씨는 이번 상봉에 동반한 가족들과 함께 북측의 형 김유성(82)씨를 부둥켜안고 울음을 터뜨렸다.작은 아버지 집에서 살다가 전쟁이 터진 뒤 고향으로 다시 돌아갔지만, 부모님과 형을 찾을 수 없었다.동네 사람들은 부모님과 형이 폭격으로 사망했다는 비보를 전했다.그는 이날 형을 만나자마자 부모님이 돌아가신 날짜부터 물었고, 60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야 부모님이 언제 세상을 떴는지를 알게 됐다.그는 "(형을 포함해) 다 죽은 줄로만 알았다"면서 헤어진 가족의 제사를 지내왔다고 안타까워했다.북측의 김형인(85) 씨는 남측에서 온 동생 형신(83)·학주(72)·학수(66)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듯 동생들을 번갈아 가면서 쳐다봤다.형신 씨는 언니에게 자신의 결혼식 사진과 흑백으로 된 아버지 사진을 보여줬다.그런 뒤 언니와 폴라로이드 사진을 한 장 찍고 디지털 카메라로도 찍은 뒤 폴라로이드 사진을 건넸다."언니, 이거 꼭 가져가.우리는 집에 가면 이거(디카)로 볼거야."형신 씨는 "(형인 언니는) 학생이었고, 여자였고, 혼자서 북에 가서 살았을 거라는 생각을 전혀 못 해서 이산가족 신청도 안했다"며 "부모님도 죽었다고 간주하고 그리 살았다"고 전했다.북녘에 사는 형 한상이(86)씨를 만난 한상엽(85) 씨는 "생각지도 못한 형의 생존 소식에 너무 기뻤다"고 말했다."강화경찰서에서 이산가족 확인요청이 왔다는 내용을 알려줬어요.사실 그 소식이 오기 3일 전에 형 제사를 지냈습니다."상이 씨는 스무살 때 북한군에 징집된 형 상엽씨에 대해 "이미 돌아가셨을 테니 제사라도 한 번 지내드려야 겠다고 생각했다"며 "따로 이산가족 신청을 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연합뉴스
조정기씨, 북측 아버지 만나…평생 남편 기다리던 모친은 석달전 사망이산가족 2차상봉단 일정시작…北언니 만난 南동생 "살아줘서 고마워""맏아들이에요.맏아들."조정기(67) 씨는 한 번도 직접 얼굴을 본 적이 없는 북측 아버지 조덕용(88) 씨를 만나자마자 눈물을 왈칵 쏟았다.2차 이산가족상봉행사 단체상봉이 열린 24일 오후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에서는 그리운 가족을 만난 감격에 곳곳에서 오열이 터져 나왔다.아버지 조덕용 씨는 6·25 전쟁 때 홀로 북으로 갔고, 당시 어머니 뱃속에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조정기 씨가 있었다.한 번도 아버지 얼굴을 보지 못한 채 긴긴 세월을 참아낸 것이다.조정기 씨는 "살아계실 줄은 꿈에도 생각 못 했다"며 감격스러워했다.조 씨의 어머니는 평생 남편을 그리워하다 조덕용 씨가 살아있다는 소식이 전해진 7월 5일보다 불과 50여일 전인 5월 15일에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조 씨는 어머니가 평생을 혼자 사시다 돌아가셨다며 "조금만 일찍 연락을 받았으면…"하고 안타까워했다.눈물 닦으려 손수건을 사왔다는 조 씨는 "아버지. 그런데 괜찮아요.보니까 괜찮아요.어머니때문에 그렇지"라고 말하더니, "나한테 미안하다고 안 해요?"라며 어머니와 자신을 남겨두고 떠난 아버지에 대한 서운함을 내비쳤다.귀가 어두운 조덕용 씨는 들리지 않는지 말이 없었고, 조정기 씨도 아버지 손을 잡고 그냥 웃었다.그는 "아버지한테 다 이야기하고 나니 다 풀렸다"면서 "살아계신 것만 해도 고맙다"고 말했다.우기주(79) 씨는 휠체어를 탄 북측 언니 우기복(86) 씨와 만나자 "살아줘서 고마워"라며 눈물을 쏟았다.경기도 양주에 살던 우기주 씨는 언니 우기복 씨가 전쟁 직후 교육을 받으러 간다고 친척을 따라나선 이후 더는 언니를 만나지 못했다가 이날 극적으로 상봉했다.김정숙(81) 씨도 69년만에 만난 북측 언니 김정옥(85) 씨 손을 잡고 "언니가 가던 녹슨 철길 따라서 우리가 오늘 왔어. 나는 언니 얼굴도 모르잖아. 엄마 얼굴도 모르고. 내 이름을 어떻게 기억했어"라고 말하며 계속 울었다.김정옥 씨는 1949년 청진으로 돈 벌러 간다고 떠난 이후 전쟁이 터지면서 강원도 양양에 살던 다른 가족들과 연락이 닿지 못했다.황보원식(78) 씨는 북측의 이부누나 리근숙(84) 씨를 보자마자 한동안 끌어안고 울었다.리근숙 씨는 전쟁통에 원산 방직공장에 돈 벌러 간다고 떠나면서 가족들과 헤어졌다.당시 리 씨가 집에 남겨두고 간 자수를 남측 가족들은 챙겨왔다.안경숙(89) 씨는 북측 조카 안세민(80) 씨가 들어오자 "세민아" 외치며 달려가 안세민 씨를 안았고 가족들 모두 서로를 껴안고 대성통곡했다.권혁찬(81)·혁빈(81) 형제는 북측 형 권혁만(86) 씨가 들어오자 단번에 알아보고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이순연(53) 씨도 상봉장에서 북측 삼촌을 만나자마자 "저예요.순연이. 제가 순연이에요"라며 통곡했다.최고령 강정옥(100) 할머니는 고향 제주도를 떠나 서울에 취직하러 갔다가 헤어진 북측 동생 강정화(85) 씨를 꼭 안아주고 쓰다듬으며 "정화야. 정화야. 안아줘야지. 아이고 고맙구나"라고 했고, 동생은 "믿어지지가 않는다"고 화답했다.이날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열린 금강산 지역에는 태풍의 영향으로 온종일 비가 내렸지만, 상봉행사에 크게 방해가 될 정도는 아니었다.26일까지 계속되는 이산가족 2차상봉에는 남측 81가족 326명이 참여했다.상봉단은 단체상봉에 이어 환영 만찬에서 가족들을 다시 만나고 이튿날 개별상봉과 객실중식, 단체상봉, 마지막 날 작별상봉 및 공동중식 순서로 총 12시간 동안 함께 시간을 보낼 예정이다./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