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인상 부담에 구조조정·무인경비 도입, 설 자리 줄어
지자체 역할 중요…"제도·인식 개선, 관리감독 강화해야"


내년도 최저임금 협상이 한창인 가운데 경비 노동자들에겐 최저임금 상승이 오히려 해고 위협이란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에 대비해 아파트 입주민들이 인건비 인상 부담을 덜려고 경비 인력 감축에 나서는가 하면, 일부 아파트에서는 아예 무인 경비 시스템을 설치해 경비원의 설 자리를 없애고 있다.

경비원들은 최저임금 인상으로 보다 안정된 생활을 기대했지만, 부작용에 대한 대책 마련이 부족하다 보니 오히려 직장을 잃고 거리로 내몰리는 실정이다.

◇ 최저임금 상승이 도리어 '고용 위협'

대전 서구의 한 아파트 관리사무소는 최근 경비원 26명에게 모두 사표를 받았다.

경비원 인건비 상승을 우려한 이 아파트 입주자 대표들이 경비원 감축안을 주민투표에 부쳤고, 투표에 참가한 입주민 51.8%가 찬성표를 던졌다.

5년 전 경비원을 52명에서 26명으로 줄이고 나서 두 번째의 대량 해고인 셈이다.

관리사무소는 주민투표 결과에 따라 올해 10월까지 경비원 26명을 모두 해고하고 12명을 다시 채용할 계획이다.

올해 이 아파트 경비원들은 2교대로 근무하며 매달 165만원의 월급을 받고 있다.

지난해 처음으로 경비 노동자에게 최저임금이 100% 적용되면서 월급이 148만원에서 17만원 정도 올랐다.

큰 이변이 없는 한 올해도 최저임금이 인상되면 내년에도 아파트 경비원 월급이 오르기 때문에 입주자 대표회의에서 사전에 인력 감축에 나선 것이다.

최저임금과 연계한 경비원들의 계속된 임금 상승을 우려해 무인 경비시스템을 도입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서울 강서구의 한 아파트는 지난 2월 '통합보안시스템'을 설치하면서 경비원 44명 전원에 해고를 통보했다.

지난해까지 두 차례 주민 투표에서 부결됐지만 올해 1월 주민 과반수가 찬성해 통과됐다.

최근 분양하는 신규 아파트 가운데는 아예 무인경비시스템을 설치하고 전문 보안회사에 위탁을 맡기는 방식으로 상근 경비원을 최소화하는 곳도 등장하고 있다.

◇ 여전히 열악한 처우…'저임금' 업무상 고충 1위

최저임금 인상이 기대와 달리 현장 경비 노동자에겐 적용되지 않는 점도 문제다.

간신히 재고용에 성공하더라도 실제 임금 인상으로 이어지기가 쉽지 않다.

서울노동권익센터가 지난해 10∼12월 서울 25개 자치구의 아파트 경비원 45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경비원 85.9%가 위탁관리회사의 계약직으로, 대부분 24시간 격일제 교대근무를 하고 있다.

24시간 근무를 한다고 하지만 대부분 아파트가 휴식시간을 늘리는 방법으로 근무시간을 줄여 저임금을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

휴식시간이 실제 휴식으로 이어지는 것 또한 불가능하고, 일을 해야 하는 처지다.

지난해 기준 경비 노동자의 평균 급여는 149만2천원이었으며 적정임금으로 생각한 액수보다 여전히 20만원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설문에 참가한 경비노동자의 34%가 저임금을 업무상 고충 1순위로 꼽았다.

최저임금 100% 적용이 편법으로 회피되면서 실제 임금 상승으로 이어지지 않는 것이다.

◇ 대책 없나…"지자체 역할 중요"

최저임금 인상 부작용을 해결하는데는 지자체 역할이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자체가 나서서 고령 경비원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입주자와 경비원의 '가교역할'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충남 아산시는 6일 고령 경비원에 대한 입주민 이해도와 고용유지, 근무여건·처우개선 등을 평가해서 우수 아파트 7곳을 선정해 보조금을 지원했다.

아산시는 경비원에 대한 인식개선 등 공동체 의식을 높이려고 노력한 아파트에 가산점을 부여했다.

경기도는 아파트 모범관리단지 평가제도에 경비 근로자의 고용유지와 처우개선 항목을 추가했고, 시설 보수비를 지원할 때도 경비 근로자의 처우를 평가 점수에 포함하는 등 입주민과 경비원들의 연결 고리를 찾는 데 힘을 기울였다.

울산 북구는 지난 연말 최저임금 100% 적용에 따른 경비원의 고용 불안 해소와 근무환경 개선을 위해 9개 아파트 단지와 협약을 체결, 주민대표 교육을 하는 노력을 기울였다.

한편, 일부에서는 최저임금을 지역·업종별로 차등해서 인상해야 한다는 주장도 없지 않다.

생활여건, 물가수준 등을 고려해 인상 폭을 적용하자는 의미다.

서울노동권익센터 김성희 소장은 '경비.청소 노동자의 실태 분석' 보고서를 통해 "현장에서는 제도적으로 명시된 권리도 보장받기 어려우므로 아파트 노동자의 처우와 업무 만족도 향상을 위한 지원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며 "아파트 노동자의 권리를 지지하는 제도 개선과 입주민, 지역 커뮤니티를 통한 인식 개선 노력, 관리 감독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국종합연합뉴스) 양영석 기자 young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