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최종건 SK그룹 창업주 부인 노순애 여사의 발인식이 31일 경기 수원 연화장에서 치러졌다. 노 여사의 둘째아들인 최신원 SKC 회장(왼쪽 첫 번째)과 셋째아들 최창원 SK케미칼 부회장(두 번째)이 연화장 안에 있는 승화원으로 들어서고 있다. SK그룹 제공
고(故) 최종건 SK그룹 창업주 부인 노순애 여사의 발인식이 31일 경기 수원 연화장에서 치러졌다. 노 여사의 둘째아들인 최신원 SKC 회장(왼쪽 첫 번째)과 셋째아들 최창원 SK케미칼 부회장(두 번째)이 연화장 안에 있는 승화원으로 들어서고 있다. SK그룹 제공
서울 일원동 삼성병원의 주말은 참으로 따뜻했다. 오랜 시간 어머니처럼 지내 온 그분에게 마지막 인사를 드리기 위해서 가는 길이었다. 여전히 인자한 모습 그대로였다. 사진 주변 꽃장식이 없었더라면 장례식장이라 느끼지 못할 평소의 자상한 모습 그대로였다.

1973년 일어난 두 가지 중요한 일이 있었다. 한 가지는 내가 동양방송에서 KBS로 옮긴 일이다. 다른 하나는 나와 절친 후배들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셨다는 것이다. 그분이 바로 담연 최종건 선생이시다. 오늘의 재계 3위 그룹인 SK의 창업자다.

나는 최종건 선생 후손들과 막역하다. 어머니 가슴에 대못질을 하고 먼저 간 윤원이도, 해병대 정신으로 왕성한 경영활동을 하고 있는 신원이도 모두 동생들이자, 인생 친구들이다. 그 어머니인 노순애 여사를 지난 주말 마지막으로 보고 왔다.

1985년 11월4일 첫 방송을 탄 ‘가요무대’는 내 인생과 같이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에서 가장 많이 인용하는 말이 있다. ‘학(鶴)처럼’이란 말이다. 그 자체만으로도 곧고, 우아함이 연상된다. 노순애 여사는 내게 그런 분이셨다.

친구처럼 지내 온 후배들 어머니의 현실 속 삶은 참으로 질곡(桎梏)이었다. 젊은 나이에 청송(靑松) 같은 남편을 먼저 보낸 것도 가슴이 찢어질 터인데, 그 몸의 오장육부라도 떼어 줄 수 있는 아들마저 앞세우셨으니, 그 어찌 한스럽지 않았으리.

그 긴 세월 노순애 여사가 보여 준 삶은 그러나, 인동초로 이겨 낸 학이었다. 8남매의 종부(宗婦)로 발을 들인 그의 삶이 드라마 한편 같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천만의 말씀이다.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흠을 찾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출가한 그녀에게 떨어진 첫 임무는 최종건 선생의 부인, 그리고 최씨 집안의 종부였다. 그리고 어머니와 할머니라는 천부(天賦)가 이어졌다. 부인으로서 최종건 선생이 선경을 창업하고, 그 후대가 대한민국 3위 기업의 태산을 만들게 한 내조가 있었다.

종부 노순애 여사의 장례식장에서 그분의 자식들을 만났다. 그가 평생을 바쳐 훈육했기 때문인지 자식들이 가장 많이 쓴 말이 화목이었다. 최신원 회장부터 최태원 회장, 손자 손녀들까지 모두 화목을 얘기했다.

장삼이사 누구나 다 알지만, 못 하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보여 주는 교육이다. 안타깝게도 지금껏 살아왔지만 내 스스로도 자신이 없다. 오늘의 SK가(家) 형제와 친지들의 화목은 유난히 남다르니, 이것은 필시 최씨 집안 종부 노순애 여사가 온 몸으로 쌓은 덕업(德業)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나는 담연 선생의 35주기와 40주기 추모 행사도 같이했다. 친구 같은 후배들의 아버지를 추모하는 마음으로 행사를 진행한 사회자였다. 나는 이제 50주년 추모도 같이하고 싶다. 노순애 여사의 덕업 위에서 자란 화목(和睦)의 크기를 확인할 것이다. 그리고, 추모사로 “담연 선생님, 하늘에서 노 여사를 만나시면 크게 칭찬해 주세요. 자식들이 화목하도록 참 잘 키우셨네요”라고 말할 것이다.

학처럼 살다 간 노순애 여사는 이제 ‘화목해라’는 화두를 남기고 떠나셨다. 이제 온전히 SK가가 모범을 보여 앞장서라. 어려운 일도 아니지만, 결코 쉬운 일도 아니다. 당신들의 어머니, 할머니가 하셨던 것처럼만 따라 하면 될 것이다. 첫 기일(忌日)에 ‘당신의 뜻,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고 자신 있게 고할 수 있으면 된다.

김동건 아나운서
김동건 아나운서
SK가의 모든 가족들이 어머니, 할머니를 닮은 새로운 학이 되라 말하고 싶다. 그러면 가문은 더 융성하고, 그들이 운영하는 SK는 승승장구할 것이다. 그 자양분에 우리 세상은 참으로 더 살맛나리라. 어제 아침 가족과 친지, SK 식구들이 흐느끼는 속에 엄수된 영결식 추모영상에서 들려준 그의 마지막 말이다. “신원아, 태원아, 재원아, 창원아, 그리고 딸들아, 화목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