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하 노조들이 줄줄이 빠져나가고 있는 민주노총은 지난 1995년 출범 이래 최대 위기를 맞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도미노식 탈퇴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상급 단체로서의 존립 기반 자체에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는 까닭이다. 일선 노조와 조합원들이 공감할 수 있는 새로운 노동운동 노선을 정립하는 게 시급한 당면과제로 떠올랐다는 이야기에 다름아니다.

실제 일선 노조들의 민노총 기피 움직임은 날이 갈수록 가속화되는 추세다. 올들어서만도 서울도시철도 인천지하철 인천국제공항공사 등 10여개 노조가 민노총의 우산을 벗어던졌다. 특히 지난 주말 조합원 투표를 실시한 KT노조의 경우는 95%에 이르는 압도적 찬성률로 탈퇴를 결의했다. 민노총이 일선 조합원들의 정서와 얼마나 괴리된 활동을 해왔는지,그로 인해 얼마나 신뢰를 상실했는지 여실히 드러난다. KT노조의 이탈로 산별(産別)조직인 IT연맹도 유명무실한 처지에 빠졌다.

사태가 왜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는 너무도 분명하다. 민노총이 근로조건 개선과는 무관한 정치 투쟁을 일삼고 내부 파벌 다툼으로 소일해온 점이 조합원들로 하여금 신물을 내게 만들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괜스레 소리만 요란하고 사회 혼란만 부추겼지 실속은 전혀 없었다는 이야기다. KT노조가 민노총 탈퇴와 함께 "현장 속으로 파고드는 진짜 노동운동을 하겠다"고 밝힌 데서도 이런 점은 충분히 확인된다.

그런 차원에서 지금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정신이다. 공허한 정치투쟁에 매달릴 게 아니라 조합원들에게 실질적 도움을 주는 노동운동을 해야 한다. 노조라는 게 기본적으로 조합원들의 권익 보호와 근로조건 향상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고 보면 지극히 당연한 명제이기도 하다. 민노총 내부에서도 그런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석행 전 위원장은 취임 직후 "파업을 위한 파업은 자제하고 성과를 중시하는 노동운동을 펴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그의 다짐은 조직 내부의 강경 세력에 밀려 실천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민노총은 과감히 정치투쟁노선을 버리고 환골탈태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산하 노조의 잇단 탈퇴에도 잘못을 깨닫지 못한다면 조직의 미래가 어떠할지는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