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로 고인에 대한 수사가 종결된 가운데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을 노 전 대통령에 대한 뇌물공여 혐의로 추가 기소할지가 검찰에 `딜레마'로 떠올랐다.

대검 중수부는 당초 대통령 재임 때 박 전 회장으로부터 640만 달러와 명품시계 2개를 포괄적 뇌물로 수수한 혐의로 노 전 대통령을 사법처리할 예정이었으나 그가 지난 23일 서거함에 따라 `공소권 없음'으로 수사를 종결했다.

그러나 박 전 회장은 "노 전 대통령을 위해 돈을 줬다"고 자백했고, 관련자 진술이나 직원을 시켜 100만 달러를 환전한 기록 등 보강증거가 확보돼 있어 검찰은 노 전 대통령에 대한 뇌물공여 혐의로 박 전 회장을 추가 기소할 수 있는 상황이다.

엄밀히 따지면 두 사람 간에 뇌물이 오간 사건으로, 노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고 해서 박 전 회장의 뇌물공여 혐의까지 처벌 못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게 법조계 시각이다.

검찰 일각에서는 명예회복을 위해서라도 박 전 회장을 추가 기소해 법정에서 지금까지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 내용을 공개하고 진실을 규명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박 전 회장의 뇌물공여 건이 재판에 넘겨지면 뇌물수수 피의자 격인 노 전 대통령이 부재한 상황이어서 박 전 회장이 뇌물공여 혐의 처벌을 피하려고 자백을 번복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게 다수의 견해라고 검찰 관계자는 전했다.

그동안 노 전 대통령 측은 600만 달러와 명품시계 두 개를 받았다는 사실 자체는 인정하면서도 "노 전 대통령은 몰랐다"고 주장해 왔다.

따라서 사건의 핵심은 `받았느냐, 안 받았느냐'가 아니라 `노 전 대통령이 알고 있었느냐'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검찰이 보강증거를 확보했다 하더라도 "노 전 대통령의 요구로 줬다"는 박 전 회장의 진술이 가장 중요한 증거인데 이를 스스로 철회한다면 뇌물공여 혐의는 무죄 선고 가능성이 상당히 크다는 해석이다.

노 전 대통령이 검찰 수사를 받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데다 박 전 회장의 뇌물공여 혐의까지 무죄로 결론나면 검찰에 대한 비난은 다시 증폭될 수 있다는 우려도 만만치 않다.

또 재판 과정에서 노 전 대통령의 부인인 권양숙 여사와 아들ㆍ딸 등 유족이 법정에 서야 한다는 점을 참작하면 이번 사건 수사 여파가 조기에 봉합되지 않고 최대 수년간 검찰에는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도 간과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이런 점 등을 근거로 박 전 회장이 추가 기소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현재로선 우세하지만 "검찰이 기소하지 않을 명분이 없다"거나 "박 전 회장 자백에 의존한 수사를 인정하는 것", 또는 "기소편의주의 폐해로 기록될 것"이라는 반대 의견도 적지 않아 검찰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노 전 대통령 서거로 검찰 수사가 종결된 만큼 노 전 대통령 관련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재판과정을 통해서라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대검 관계자는 31일 연합뉴스와 전화통화에서 "박 전 회장을 뇌물공여 혐의로 추가기소하든, 안 하든 문제가 되는 상황이라 법리검토는 물론 다양한 시각에서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재경법원의 한 판사는 "추가기소 여부는 검찰이 판단할 문제이지만 이번 사건처럼 혐의가 구체적으로 드러났음에도 기소를 하지 않는다면 기소독점권의 남용이라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연합뉴스) 성혜미 기자 noano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