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 홍수의 시대다. 리더십에 관한 저서와 강연들이 넘쳐난다. 카르타고의 맹장 한니발에서부터 오바마 리더십까지 영웅들에게서 역사를 횡단하는 리더십을 발췌해 현재를 살아가는 지혜를 얻으려는 시도들이다.

로펌에는 어떤 리더십이 필요할까. 정답은 없는 것 같다. 로펌마다 구성원의 색깔이 다르고 추구하는 목표가 다르기 때문이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콧대 높은 변호사들의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데는 두툼한 월급봉투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점이다. 주변 여건은 초대형 글로벌 로펌들이 법률시장 빗장만 바라보는 상황에서 유례없는 불황까지 겹치면서 국내로펌들을 옥죄는 상황이다. 이런 복합 파고를 헤쳐나갈 우리 시대의 진정한 리더는 누구일까.

'사무라이'. 법무법인 세종 김두식 대표의 별칭이다. 몇 올 남지 않은 머리 모양과 둥근 안경테 등 영판 일본 무사다. 외모뿐 아니다.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이를 밀어붙이기 위해 선 · 후배 변호사들과 언쟁도 불사하는 업무 추진 방식도 영락없는 투사형이다. 세종이 덩치에 걸맞은 운영시스템을 갖추기 위해 '성장통'을 겪는 과정에서도 그의 투사 기질은 십분 발휘됐다.

결국 세종은 김 대표를 중심으로 세대교체를 이뤘지만 그의 투쟁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지난 13일 서울 중구 순화동 본사 빌딩에서 만난 김 대표는 이미 한바탕 전투를 치렀는지 입술이 부르터 있었다. "외국 클라이언트들과 매일 회의를 갖다보니…." 국내 변호사만 160명이 넘는 대형 로펌의 대표이기 이전에 국제통상분야에 관한한 최고 변호사로서 역량을 발휘하고 싶은 게다. 일본 호주 등지의 세계적 로펌들을 방문해 벤치마킹한 마케팅 스티어링 커미티 등 다양한 위원회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일일이 챙기는 일도 그의 몫이다.

로펌 대표에게 필요한 자질을 묻자 그는 '빌게이츠 리더십'을 소개했다.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 실력가이면서 △세계경제 등 시대흐름에 대한 통찰력을 갖는 한편 △사회적 책임도 다해야 한다는 것. "안주하고 싶을 때가 물러날 때"라며 변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김 대표에게서 프로정신으로 똘똘 뭉친 로펌 세계의 일단을 엿볼 수 있었다.

대형 로펌 대표 가운데서 김 대표와 같은 투사형은 보기 힘들다. 1세대 창업자들이 후선으로 차츰 물러나면서 공동대표나 운영위원회 등 집단지도체제가 대세다.

물론 김앤장의 김영무 대표, 태평양의 이정훈 대표, 율촌의 우창록 대표 등은 창업자이면서도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국내 로펌의 경쟁력을 탄탄한 반석 위에 올려놓은 이들 로펌업계의 '거장'들을 만나 확인한 리더십은 '절제'와 '화합'이다. 이들이 빠진 로펌은 상상이 어려울 정도의 카리스마를 지녔지만 가능하면 민주적 의사 결정 뒤로 자신들을 감추려 무진 애를 쓴다.

우창록 대표는 스스로를 "있는 듯 없는 듯한 존재"라고 표현했다. 율촌 관계자는 "우 대표가 No라고 말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고 전한다. 가능하면 소속 변호사들의 견해를 존중해가면서 로펌을 이끌어간다는 얘기다. 검사 출신의 이정훈 대표에게서는 권위의식보다는 친근감이 먼저 느껴진다. 이 대표는 "모든 구성원들이 행복하도록 만드는 것"이 그의 역할이라고 했다. "소득분배를 투명하게 하고 선배가 후배에게 양보하는 가족적인 분위기를 조성했더니 로펌을 떠나는 변호사가 거의 없더라"고 자랑했다. 로펌은 대표 개인의 리더십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에 따라 굴러가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오너 못지않게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하는 전문경영인들이 있다. 김앤장의 이재후 대표, 광장의 김병재 대표, 바른의 김동건 대표, 로고스의 이상곤 대표 등이 그 주인공들. 이 대표는 김영무 · 장수길 대표와 더불어 1979년부터 30년간 대표 자리를 지킨 김앤장의 산 증인이다.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최고참이어서"(이 대표가 58학번, 김 · 장 대표는 60학번) 대표자리에 앉아 있다는 그는 '나를 따르라'고 외치는 기업의 대표와 달리 "같은 변호사 자격을 가진 선배 중 한 명"이라고 자신을 낮추었다. 1등 로펌 구성원으로서의 프라이드를 지켜나가기 위해 선후배 간에 상호존중하는 것이 김앤장의 오랜 전통이다 보니 이 대표의 역할은 "팀플레이를 잘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것 뿐"이라고 소개했다.

고등법원 판사 출신인 김병재 대표와 서울중앙지검 검사 출신인 이상곤 대표 둘 다 교회 장로다. 이들과 함께 있다보면 자연스레 섬김의 리더십을 배울 수 있다. 여기에 구성원들이 전문가로서 성장할 수 있도록 조언을 마다않는 '코칭 리더십'이 가미된다. 몸에 밴 겸손함으로 후배들을 격려하는 이들의 마술에 빠지면 밤을 새워서라도 변론을 준비하지 않을 수 없다.

후배들에게 일을 맡기지 않고 직접 챙겨야 직성이 풀리는 바른의 김동건 대표는 '솔선수범하는 리더십'이다.

30년 판사 경력에 서울고등법원장까지 지냈지만 그의 눈은 더 먼 곳을 향하고 있다. 로펌 대표로서의 인생 2막 캐리어도 차근차근 쌓아가고 있는 것.

2005년 바른 입성 직후 해마다 매출을 100억원씩 더하는 김 대표의 추진력과 관련해 바른의 한 변호사는 "가족과 단 하루도 저녁식사를 함께 한 적이 없을 정도로 밤낮으로 뛰어다녀 법조마당발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고 설명했다.

로펌 내부에서 어떤 잡음도 나오지 않는 것도 덕장인 김 대표가 리더십을 발휘한 결과라는 것. 색깔과 모양은 다르지만 나름의 확고한 철학이 담긴 이들 대표의 리더십이 버티고 있기에 한국 로펌의 미래는 외부 환경의 변화에 쉽사리 흔들리지 않을 것 같다.

김병일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