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의 연대파업은 대한민국 노사관계의 현 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파업 관련 사업장마다 협상과정에서 실리와 실속은 "뒷전"이었다. 오히려 명분과 체면이 전면에 나섰다. 결국 노사 양측은 서로 막대한 손해를 보고서야 정상 조업에 합의했다. 한마디로 한국 노동운동의 시계가 대립적 노사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20세기에 머물고 있음을 알려주었다. 이처럼 노사협력체제가 구축되지 못한데에는 노조와 사용자,정부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노동전문가들은 경영진을 적대시해야 "정통"으로 인정받는다고 여기는 노조의 시대착오적 인식 노조를 여전히 견제의 대상으로 삼는 사용주의 그릇된 태도 분규과정에서 발생한 각종 범법행위를 눈감아오다가 여론의 질타를 받고서야 공권력을 행사한 정부의 무소신 등이 주범이라고 진단한다. 이번 파업사태를 경험하고도 '신노사문화'를 확산시키지 못한다면 우리 경제의 앞날은 암울할 뿐이라는 게 이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구체적으로 노동 관련 법령과 제도를 정비하고 '투명 경영'과 '열린 경영'을 통해 노사가 함께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상급 노조단체의 지침에 따라 불법파업이 또 자행될 경우 해당 기업과 노조는 설 땅을 잃는 것은 물론 더이상 외국인 투자도 기대할 수 없다고 경고하고 있다. ◇법과 제도부터 정비하자=김동원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대화나 적법한 절차를 거쳐 노사문제를 풀 수 있는 제도가 미흡해 과격한 노동운동이 되풀이되고 있다"며 "파업의 절반 이상이 불법이 되는 것은 분명히 법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노동위원회가 직권중재나 행정지도 등을 통해 사실상 파업을 가로막는 결정을 내려 근로자의 권익을 해치고 있다는 것이다. 노사분규 해결의 최선책은 노사간 자율협상이고 차선은 정부의 중재라는 것이 김 교수의 지론이다. 정부는 폭력 등 불법상황이 나타나지 않을 경우 참고 기다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선 한국노동교육원장은 "기업별 노조체제의 특성으로 소모적인 노사분규가 매번 발생하고 있다"며 "유럽에서는 사용자협회와 산별노조가 임금협상을 벌이면서 협상에 따른 시간과 자원의 낭비를 막고 있다"고 설명했다. 노사정위원회가 노사 단체로부터 신뢰를 얻어 제몫을 다하는 것도 중요하다. 네덜란드 등 일부 선진국에서는 노사정위원회와 유사한 기구가 근로자에게는 고용안정이란 '선물'을 주는 대신 사용자에게는 노동시장 유연성 확충 또는 임금동결로 '보상'해 주고 있다. ◇동반자관계 구축에 나서자=이원덕 한국노동연구원장은 "사용자의 경영정보 미공개와 권위적인 경영이 노사관계를 갈등 대립국면으로 몰아넣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며 "투명경영과 근로자를 참여시키는 경영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이 원장은 대표적인 사례로 한국전기초자를 들었다. 경영자가 고통분담을 솔선하고 투명경영에 나섬으로써 초일류기업으로 도약했다는 것. 이 원장은 경영자가 이 두가지만 실천하면 최소한 과격한 노사분규는 일어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노동조합도 경영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등 회사가 처한 '현실'과 '과제'를 정확히 파악,대처해야 한다는 제언도 제기됐다. ◇합리적인 노동운동을 하자=거의 매년 파업이 반복되는 사업장에는 반드시 노사간 불신이 깔려 있다. 과격한 노동운동의 이면에는 그동안 희생을 강요받았다는 노동자들의 누적된 피해의식이 숨어 있다. 김동원 교수는 "그렇다고 피해의식 때문에 노조가 폭력투쟁을 계속할 경우 여론의 지지는 기대하기 힘들다"며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그간 여론에 반하는 노동운동을 벌이지 않았는지 반성한 뒤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사용자도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변해야만 노사협력관계를 얻어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원덕 원장은 "앞으로는 전문성을 갖추고 대화와 협상을 통해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노동운동만이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도경 기자 infofe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