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근 저".

샐러리맨들의 해외출장이 고달파졌다.

"해외출장 신3원칙" 탓이다.

신3원칙이란 "짧게 싸게 그리고 가까운 곳에만"을 뜻한다.

한마디로 돈쓰는 출장은 가지 말라는 것.

그리고 가더라도 돈은 최대한 절약하고 오라는 얘기다.

신3원칙중 "싸게"는 이전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강도가 세다.

삼성그룹 부장급의 비행기 좌석은 올초부터 이코노미 클래스로 떨어졌다.

비즈니스 클래스에서 두다리 뻗고 가던 작년과는 영 딴판이다.

하긴 대기업 그룹 총수도 이코노미에 앉아가는 마당이니 불평할
건덕지도 없다.

정세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올초 출장길에 이코노미를 이용했다.

물론 상징적인 의미다.

하지만 그 여파는 대단하다.

임직원들이 어떻게 하든지 출장비용을 줄이기에 고심하고 있는 것이다.

비행기뿐 아니다.

다이아몬드 다섯개짜리 특급호텔은 꿈도 못꾼다.

쓸데없이 쓰는 돈도 줄여야 한다.

몇달러짜리도 영수증을 챙기는 "쫀쫀함"은 이래서 보편화되고 있다.

아예 출장인원을 줄이는 방법도 생겨났다.

임원들이 출장갈 때 부하직원이 수행할 수 없도록 한 LG그룹이 대표적
예.

소위 "가방모찌"라고 불리는 수행비서를 없앴다.

사람이 줄어드니 출장비용이 줄어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짧게"를 지키는 일도 쉽지 않다.

출장기간을 단축한다는 것은 쉴틈이 없다는 얘기와 같다.

밤비행기를 타고 이동하는 것은 다반사다.

상대방에게 실례가 되지 않는 범위내에서 최대한 밤늦게까지 약속을
잡는다.

해외출장만 가면 올빼미족이 돼서 강행군을 해야한다.

잘나가던 시절에 하루 이틀 빼서 여행하던 것은 이젠 먼 남의 나라
얘기가 됐다.

고단하지 않을 수 없다.

가까운 곳에만이라는 원칙도 샐러리맨을 힘들게 하기는 마찬가지.

먼 곳으로 출장가면 기간도 길고 비용도 많이 든다.

그러니 출장 순위에서 먼저 잘린다.

남미나 아프리카 같은 곳은 아예 출장계획서를 올리지도 못한다.

바이어 관리하기가 그만큼 힘들어졌다는 뜻이다.

신3원칙만이 해외출장을 팍팍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출장을 가기 전이 더 어렵다.

웬만한 것은 팩스나 전화로 처리하는 게 어떠냐는 보이지 않는 압력을
받는다.

출장계획서를 올리는 것 자체가 눈치를 봐야하는 상황이다.

샐러리맨들의 고민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해외출장을 떠나지 못하면 그만큼 일하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외국의 시장을 뚫고 관리하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또 무슨 일이 발생했을 때 한국에 앉아서 해결하는 것은 직접 가서 하는
것보다 몇십배 힘든 경우가 많다.

출장을 가나 안가나 힘든 것은 마찬가지라는 얘기다.

샐러리맨들에게 불황의 시대는 힘겹기만 하다.

< 조주현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