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의 주요 원인은 무리한 운항이다"

"공항의 관제잘못이 더 큰 이유고 비행기 자체에도 결함이 있을 수 있다"

괌에서 추락한 대한항공 여객기의 사고 원인을 두고 한국과 미국측의
보이지 않는 신경전이 치열하다.

대한항공이나 보잉사는 막대한 피해를 낸 이번 추락사고의 원인제공자가
될 경우 큰 타격을 받을 수 밖에 없기 때문.

아가냐공항 역시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곳으로 낙인돼 휴양지를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질 것은 뻔하다.

이에따라 한.미 양측은 블랙박스 조사결과가 나와 봐야 알겠다는 신중한
자세를 보이고 있으면 서도 은연중 상대방이 잘못했을 가능성을 흘리고 있다.

대한항공측은 공식적으로는 사고원인에 대해 노코멘트하고 있다.

원인규명이 진행중이기 때문에 뭐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것.

하지만 사고당시 공항의 착륙 유도장치(Glide Slope)가 작동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또 활주로의 관리주체가 민간인들과 군인들로 이원화돼 체계적으로 운용
되지 못했다는 점도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

미국측 사고조사팀이 사고 첫날인 6일 현지 실사를 하면서 "공항의 잘못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말한 대목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생각이다.

또 조심스럽게 보잉기 자체에도 결함이 있지 않았느냐는 의심을 하고 있다.

보잉기는 이번 사고를 포함해 세계에서 17번이나 대형사고를 일으켰던
"전과가" 있는 탓이다.

사실 지난 92년에는 미연방항공국에서 보잉747 전기종의 엔진고정장치를
긴급 점검하도록 지시한 바 있다.

따라서 이번 사고도 비행기 자체에 문제가 있었을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 없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아가냐 공항이나 보잉사의 생각은 다르다.

아가냐 공항측은 관제잘못이 아니라 조종사의 실수쪽에 무게를 더 두고
있다.

지난 7월초 착륙유도장치가 9월까지 작동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미 통보
했다는 것.

따라서 비행기내의 비행관리시스템(FMC)으로 착륙해야 하지만 사고가 난
보잉기는 FMC를 장착하고 있지 않았다는 것.

FMC는 88년 이후에 만들어진 비행기에는 장착돼 있지만 그 이전 비행기에는
없는 장치.

이번에 사고가 난 비행기는 84년에 만들어진 것이어서 이 장치가 부착돼
있지 않았다.

대한항공은 평소에는 FMC가 부착된 A300을 운항했지만 휴가철을 맞아 많은
승객을 태울 수 있는 보잉기로 바꾼 게 사고의 원인이라는 주장이다.

또 사고기를 운항했던 박용철기장이 아가냐 공항 주변의 지형에 익숙하지
못한 것도 사고의 원인으로 보고 있다.

실제 박기장은 91년 이후 괌에 두번밖에 운항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시계를 분간할 수 없는 악천후 속에 지형에 익숙치 못한 기장이 FMC도
없이 착륙하다가 사고를 냈다는게 미국측의 시각이다.

또 사고기가 서울과 제주도를 왕복운항한 뒤 곧바로 괌으로 출발하는 등
항공기 운영에도 문제가 있었다는 의견을 미국측은 내놓고 있다.

대한항공은 미국측이 블랙박스 조사가 끝나지 않았는데도 조종사의 잘못
으로 일방적으로 몰고가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고원인을 미국 연방교통안전위원회(NTSB)가 주도적으로 조사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측 주장만 일방적으로 전달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

건설교통부가 조종사 출신의 전문가를 워싱톤으로 급파해 사고원인 조사에
동참토록 한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현단계에서 어느쪽 주장이 옳은지는 속단할 수가 없다.

다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사고수습권과 정보를 독점하고 있는 미당국의
점차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 특별취재반 : <>반장=김형철 사회1부장
<>괌=김준현(사회1부) 김병언(사진부)
<>사회1부=정용배 김정아 남궁덕 최인한
장유택 조주현 김주영 김인식
<>사회2부=김상철
<>산업1부=양승득
<>국제부=김영규 양홍모
<>경제부=송재조 문희수
<>정치부=최완수 이건호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