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한다는 게 이렇게 즐거울 줄은 몰랐습니다"

명예퇴직으로 본의 아니게 실업자 생활을 두달동안 해야했던
김효성씨(47).

지금은 인천 석남동에 위치한 명정환경(주)의 보일러기관장인 그는 요즘
일하는 게 신명난다.

회사동료들로부터 "신들린 것 같다"는 말을 들을 정도다.

하지만 정작 김씨에게는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는 새로 얻은 일자리가 마치 뒤늦게 본 아들처럼 그 무엇보다도
소중하기 때문이다.

월급은 90만원으로 이전 근무처보다 반으로 깎였지만 후회는 없다.

"옛 생각은 이제 잊어버렸습니다.

지금은 이 곳에서 자리를 잡으려고 몇배 더 노력하고 있죠"

하지만 김씨가 이같이 "땀흘리며 일하는 보람"을 다시 느끼기 위해서는
너무나도 힘든 고통의 터널을 지나야했다.

한창 일할 나이인 그가 갑자기 실업자가 된 것은 지난 8월.

18년동안이나 다니던 한국유리(주)가 회사경영방침에 따라 부서를
폐지하면서 졸지에 일자리에서 밀려나게 됐다.

한달간의 고심끝에 명예퇴직을 신청한 날 밤.

김씨는 가족들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아내와 두 딸뿐만 아니라 연세가 일흔셋인 노모와 시집 안간 막내
여동생까지 책임져야하는 가장인 신세가 한스러웠다.

막막한 생활이 시작됐다.

처음에는 가족들 얼굴 보기가 민망해 아침마다 무작정 거리로 나섰다.

같은 처지에 있는 회사동료들과 날마다 다방에서 모여 신세타령과
회사욕으로 세월을 내팽개쳤다.

1천2백60원을 내고 동네 수영장에서 온종일 시간죽이기도 해봤다.

그가 다시 재취업을 위해 발벗고 나선 것은 실직한지 한달 뒤쯤.

무엇보다도 일이 하고 싶어 견딜수 없었다.

어엿한 가장으로서 체면도 세우고 싶었다.

"공부 열심히 해서 장학금탈게요"라는 대학 1학년 막내딸의 대견스러움에
부끄러움과 오기도 생겼다.

이때부터 신문의 구인란과 각종 취업정보지를 훑어보고 이력서를 들고
뛰어다녔다.

어렵사리 구인광고를 보고 찾아간 곳에서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거절
당할때는 앞이 캄캄했다.

한때는 자영업을 할까하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직장에서 일만 해왔던 탓에 세상물정에 어두운 것이 두려웠다.

퇴직금을 사기당했다는 친구들 얘기도 간혹 들렸다.

다행히 그동안 현장에서 일하면서 취득한 열관리 고압가스관리 위험물
방화관리 등 자격증 3개가 재취업을 위한 든든한 무기가 됐다.

한달간 발이 부르트도록 돌아다닌 끝에 겨우 지금의 직장에 취업이
허락됐다.

비로소 움츠렸던 어깨가 펴지는 순간이었다.

김씨는 이제 제2의 인생을 꾸미고 있다.

대인기피증도 줄고 생활하는데 안정감도 있다.

하지만 조기에 일자리에서 밀려난채 재취업을하지 못한 사람들은 아직도
많다.

노동부에 따르면 10월말 현재 실업급여신청자수가 5천2백87명에 달한다.

이들은 지금도 이전의 김씨처럼 "일할 기회를 주지않는 사회에서 소외된
참담한 시절"을 남모르게 보내고 있다.

< 김준현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