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10명 중 7명이 A"…'코로나 학번' 등장에 기업들 '벌벌'

대학 학점 퍼주기로 변별력 실종
기업들 "채용에 반영 어렵다" 난색
로스쿨 입시는 1점차가 당락 좌우
사진=연합뉴스
팬데믹 기간 학점 특수를 누린 ‘코로나 학번’들의 졸업이 올해 말로 다가오면서 대학원과 취업 시장에 비상이 걸렸다. 일부 학교에서는 10명 중 7명이 A학점을 받을 정도로 인플레이션이 심각해 평가 지표로서 신뢰를 잃었단 평가가 나오고 있어서다. 기업들은 변별력을 잃은 학점 대신 학생을 평가할 기준 만들기에 골머리를 앓게 됐다.

10일 한국경제신문이 대학알리미 공시 자료 4개년치를 분석한 결과, 서울 주요 11개 대학의 A학점 비중은 지난해 51.3%이었다. 2020년(61.5%)에 비해 10%포인트 넘게 떨어졌지만 여전히 높다.학점 인플레이션은 코로나 시기 비대면 시험이 도입되면서 부터 심화됐다. 비대면 시험에서 부정 행위를 저지르는 등 성적 평가의 공정성에 대한 논란이 불거지자 많은 학교들이 절대 평가제를 도입한 것이다. 상대평가로 30~40%대에 머물던 A학점이 급증했다. 지난해 엔데믹을 맞으며 대다수의 대학은 대면 수업을 시작하고, 상대평가제로 복귀하고 있지만 이미 올라간 학점은 쉽게 내려오지 않고 있다.

문제는 이르면 올해 말부터 대학원 입시와 취업 시장에 학점 인플레이션의 혜택을 본 코로나 학번, 20학번이 나오게 된다는 것이다. 지난 3년간 다른 학번에 비해 비교적 쉽게 좋은 학점을 딴 학생들이 많아 학점 변별력이 떨어진 상황이다. 대기업 관계자들은 “이들의 역량을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는 새로운 기준을 마련해야 하는 한편 학점 인플레이션의 혜택을 보지 못한 학번들과의 공정성을 고려해야하는 과제가 주어졌다”고 평가했다.

코로나가 촉발한 대학가 학점 잔치로 취업시장의 혼란이 심화될 것이란 우려가 커진다. 특히 1점 차이로도 당락이 결정되는 로스쿨 등에서는 코로나 특수를 보지 못한 학생들과의 공정성 논란이 커질 것이란 지적까지 나온다. 전문가들은 학점 외에 학생들을 평가할 수 있는 새로운 기준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코로나발 ‘학점 인플레이션’ 여전

한국경제신문이 대학알리미 공시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서울 주요 11개 대학(서울·고려·연세·서강·이화여자·성균관·한양·중앙·경희·한국외국어·서울시립대학교)에서 A학점을 취득한 비중은 지난해 51.3%에 달했다. ‘코로나 학번’이 입학한 2020년(61.5%)에 비해 10.2%포인트 감소했지만 코로나 직전인 2019년(43.8%) 수준에 비해서는 높은 수준이다. 20학번이 학점 인플레이션에 가장 큰 수혜를 봤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중앙대는 2020년 A학점 비중이 72.5%로 11개 주요 대학 중 가장 높았으며 이어 연세대(69.1%) 이화여대(67.7%) 서울대(66.3%) 한국외대(64.2%) 순이었다.

팬데믹 시기 학점 인플레이션은 많은 학교에서 교수진에 절대평가제 도입을 권고하면서 촉발됐다. 비대면 체제에서 시험에 대한 관리·감독이 소홀해지면서 학생들이 함께 모여 문제를 풀거나 답안을 공유하는 등 부정행위 사례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인하대 의대와 서강대 등 명문대에서도 온라인 시험 집단 부정행위가 잇따랐다.또 주요 대학 학생들의 올라가자 수도권뿐만 아니라 지방대학에서도 학점을 따라 올렸다. 한 충남권 대학 관계자는 “졸업생들은 상위 대학 학생들보다 학점이 낮을 경우 취업할 때 치명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 주요 대학의 학점 변화를 예민하게 반영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행히 학점은 정상으로 돌아오고 있다. 되돌림 현상이 가장 심한 과목은 교직 수업이다. A학점 비중이 70.7%로 2020년(84.3%)보다 13.6%포인트 떨어졌다. 교양수업과 전공수업의 A학점 비중도 각각 61.9%에서 51.9%로, 61.0%에서 50.5%로 감소했다.

○취업·입시 공정성에 ‘골머리’

문제는 이미 높은 학점을 받은 코로나 학번이 취업 시장으로 진출한다는 점이다. 학점이 신뢰도를 잃어 마땅한 평가 기준이 없다는 설명이다. 이미 현장에서는 인플레이션 영향을 체감하고 있다.최근 채용 과정 중 서류 전형을 마친 한 대기업 인사팀 관계자는 “코로나 시기 학교를 졸업한 지원자들의 학점이 예년에 비해 현저히 높았다”며 “학점이 성실도의 지표로 여겨지던 과거와 달리 객관적인 요소로서 인사 채용에 반영하기가 어려워졌다”고 설명했다.

‘공정’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병역과 휴학 등으로 코로나 특수를 누리지 못한 학생들의 학점이 상대적으로 낮아서다. 서울권 대학 3학년에 재학 중인 이모씨(23세)는 “이번 학기에 복학하고 보니 나와 원래 성적이 비슷했던 동기와 후배들의 성적이 월등히 올라가 있었다”며 “성적 차이가 대학원 진학이나 취업에 영향을 끼칠까봐 걱정이 크다”고 토로했다.

로스쿨 입시에서도 학번 간 격차가 논란이다. 로스쿨은 백분율로 환산한 학점 1점 차이로 지원 가능한 대학이 갈릴 정도로 학점의 영향력이 크다. 대학 졸업반뿐만 아니라 직장인이 응시하는 경우가 많아 지원자 간의 학번 차도 크다. 코로나 학번이 길게는 몇년간 입시에서 유리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강진섭 강남메가로스쿨 원장은 “로스쿨은 학점 반영 비율이 대학원 중에서도 아주 높은 편"이라며 “학점이 변별력을 잃어 법학적성시험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전문가들은 학점 인플레이션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가 지적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기업들이 공정성 문제를 해소하고 우수 인재를 선별하려면 학점보다는 다차 심층 면접, 장기간 인턴 전형 등 실무 역량을 평가할 수 있는 수단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혜인 기자 he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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