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정비사업장 일부에서 구역 내 학교 부지가 사업 추진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사업시행인가 단계에서 학교용지가 폐지되거나 학교용지 확보를 위한 협의 지연으로 사업이 몇 년간 늦어지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한 정비업계 관계자는 “학생 수가 급격히 감소하는데도 교육청이 무리하게 학교 신축을 강행하는 게 문제의 원인”이라며 “정비구역 내에 학교가 있다면 사업이 지연될 확률이 100%”라고 말했다.
잠실 5단지 재건축, 5년째 학교용지에 '발목'
잠실5, 학교용지에 발목 잡혀

14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송파구 잠실주공5단지(사진)내 학교용지 부지를 놓고 이뤄진 서울시와 교육부·교육청 간 합의가 2014년부터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교육청과 조합은 단지 내 신천초(1만4414.1㎡) 부지를 조합이 매입하기로 합의했다. 조합은 주민 수가 늘어나는 점을 감안해 다른 곳에 초등학교 한 곳과 중학교 한 곳을 신설(2만2414.1㎡)해 기부채납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가 제동을 걸었다. 기존 초등학교 이전은 신설이 아닌 만큼 조합이 매입할 필요가 없고, 추가 신설하는 학교용지 매입비용은 ‘학교용지 확보 등에 관한 특례법’에 따라 시와 교육청이 절반씩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자 교육청은 “비용을 지불할 수 없다”며 재건축 진행을 위한 선결 과제인 교육환경영향평가를 하지 않고 있다. 교육청 관계자는 “조합 요구로 학교 위치를 옮기는 것”이라며 “이전비용과 이전 부지는 원인자가 부담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서울시는 교육청이 요구하는 학교용지 기부채납이 과다해 수용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교육청이 정확한 학생 수요 조사 없이 학교용지만 기부받았다가 나중에 폐지하는 사례가 빈번하다”며 “법에 따라 학교용지 매입비는 시와 교육청이 2분의 1씩 부담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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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용지 기부채납 후 폐지 잇따라

학교용지가 중간에 폐지되면서 사업이 지연되는 경우도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아현3구역, 상계2구역, 이문1구역, 응암2구역, 불광5구역, 수색1구역(존치) 등 6개 재개발 구역에서 정비계획 수립 시 학교용지가 기부채납 용지로 설정됐다가 폐지 후 공원이나 택지 등 다른 용도로 변경됐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관할 교육청에서 일관된 원칙 없이 학교용지를 과다 계상하고 있다”며 “학교를 지을 만큼 학생 수가 확보되지 않다 보니 결국 학교 부지가 폐지된다”고 설명했다.

은평구 응암2 재개발구역은 2008년 구역 지정 후 서울 서부교육지원청과 협의해 중학교 부지를 기부채납하기로 했다. 이후 2015년 11월 철거를 앞두고 서부교육지원청으로부터 학교용지 해제를 통보받았다. 조합은 학교용지로 잡았던 부지에 추가로 아파트를 지어 올해 분양을 마쳤다. 은평구 불광5구역도 2008년 중학교 학교용지를 기부채납하기로 했다가 4년 뒤인 2012년 해제 통보를 받았다. 조합은 4년 뒤인 2016년 조합총회를 열고 학교용지를 다시 개발구역에 포함하는 정비계획안을 의결했다. 서울시는 2018년 2월 학교용지를 해제하고 공원을 조성하기로 했다.

송파구 가락시영을 재건축한 헬리오시티는 교육청 요구로 당초 초교와 중교를 별도로 신설키로 했다가 초·중교를 통합한 해누리이음학교를 개교했다. 당시 교육청이 예상했던 학생 수는 총 1410명이었지만, 현재 학교에 다니고 있는 학생 수는 절반 수준인 769명에 불과하다.

그동안 정비사업조합은 학교용지 기부채납을 선호했다. 학교용지를 교육청에 기부채납하면 조합은 용적률 인센티브(도시정비법 제4조 및 국토계획법 제52조)를 받고, 학교용지 부담금을 면제(학교용지법)받을 수 있어서다.

서울시는 교육청이 수요 예측을 제대로 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학교를 넣기로 했다가 나중에 폐지하면 주민들이 반발할 수밖에 없어서다. 서울시 관계자는 “교육청의 무분별한 학교용지 요청을 막기 위해 학교용지 매입비용을 기부채납 없이 시와 교육청이 반반 부담하는 원칙을 꼭 지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아영 기자 youngmone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