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주인의 '고의 경매' 신청…전세보증금 지키려면
전셋값이 떨어지면서 ‘역전세난’과 ‘깡통전세’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집주인이 전세보증금을 제때 돌려주지 않는 데 그치지 않고 아예 집까지 떠넘기려 한다면 세입자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최근 수도권 모 지역에선 갭 투자자 A씨 소유 주택 수십 가구가 한꺼번에 경매로 나왔다. 집값이 떨어지자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아버지와 어머니 등 가족을 후순위 가짜 채권자로 끌어들인 뒤 고의로 경매에 넣은 것이다.

세입자들은 보증금을 날리지 않기 위해 세들어 살던 집을 경매로 낙찰받거나 울며 겨자 먹기로 직접 매수했다. 지난해에만 A씨 소유 아파트 59가구가 이렇게 경매에 나왔다. A씨 소유 주택이 300가구가량 되는 것으로 알려져 피해는 더욱 커질 전망이다.

▶본지 1월 16일자 A26면 참조

앞으로 역전세난이 심해지면 경매를 악용하는 이 같은 사례는 더욱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법률 전문가들은 이 경우 사기죄를 비롯해 강제집행면탈죄와 경매방해죄가 성립될 여지가 있기 때문에 세입자들이 적극 대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은유 법무법인 강산 대표변호사는 “세입자들이 자신의 보증금 아래로 직접 낙찰받은 경우 차액에 대한 보증금반환소송을 서둘러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통해 재산관계명시명령을 할 수 있어서다. 집주인이 돌려줄 돈이 없다고 버티더라도 예금과 부동산 등 모든 재산을 파악할 수 있다. 재산관계명시명령에 불응하거나 허위로 응하고, 차명 등으로 숨기면서 신고하지 않으면 그 자체로 형사처벌 대상이다.

A씨 사례처럼 고의 경매 수법을 쓴다면 형사 대응도 동시에 해야 한다는 게 김 변호사의 주장이다. 그는 이 사건에서 A씨에게 사기죄가 성립될 소지가 있다고 봤다. 수백 가구의 아파트를 임대로 놓으면서 전세금을 돌려주지 않을 목적으로 고의경매를 활용한 까닭이다.

김 변호사는 “우선 경매로 넘긴 뒤 이를 빌미로 세입자들에게 웃돈을 받고 아파트를 매각했다는 건 보증금을 돌려줄 의사가 아예 없다는 걸 보여준다”며 “피해를 입은 세입자들이 공동 대응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피해자들이 형사문제로 고소한 걸 이유로 A씨가 무고죄로 반격하더라도 무고죄가 성립될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김 변호사는 보고 있다.

사기 외에 강제집행면탈죄와 경매방해죄가 성립될 소지도 있다. A씨는 가압류, 지급명령 등 세입자들이 보증금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기 전에 자신의 손실을 피하기 위해 아버지 등과 허위 채무를 만들어 경매를 넣었다. 이게 강제집행면탈에 해당한다.

김 변호사는 “피해자들이 연대해 공론화할수록 경찰 및 검찰 등 수사기관에서도 유심히 지켜본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형진 기자 withmol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