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화물 차주들은 장거리는 기본, 심야 시간에도 운전대를 잡는다. 이렇게 누적된 피로와 과속은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국토교통부는 2020년 수송에 최소한의 운임을 정하는 ‘화물자동차 안전운임제’를 도입했다. 화물 차주들의 과속과 과로의 원인을 ‘저운임’에서 찾고 최소한의 운임을 결정하자는 의도였다. 쉽게 말하면 안전운임제는 화물차 분야의 ‘최저 임금제’라고 할 수 있다. 이 제도는 시장의 혼란을 고려해 3년 일몰제로 도입됐다. 일몰제는 일정 시간이 지나면 효력이 없어지는 것을 말한다. “효력 논하기에는 시간과 근거가 부족” 일몰 기한이 코앞에 다가온 올해, 화물연대는 두 차례나 길거리로 나섰다. 화물연대는 지난 6월 안전운임제 연장을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했고 당시 국토부와 다섯 차례에 걸친 실무 대화를 통해 연장 방안에 합의했다. 그런데 정부와 국회는 5개월이 넘도록 안전운임제 개정 논의를 진척시키지 않았다. 이에 따라 11월 24일부터 화물연대는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와 적용 차종, 품목(현재는 컨테이너·시멘트 차량만 대상)의 확대를 요구하면서 전국 동시 총파업에 돌입했다. 앞서 정부와 여당은 영구화 대신 일몰제를 3년 연장하고 품목 확대에 대해선 ‘불가하다’는 파기안을 내세웠다. 파업 6일 차이던 11월 30일 대통령실은 안전운임제가 실제 안전에 효력이 있는지 실태 조사를 한다면서 당초 제시했던 3년 일몰 연장 조차도 폐기할 수 있다고 내비쳤다. 화물연대의 복귀를 위해 안전운임제를 인질로 삼은 것이다.정부와 화물연대는 안전운임제에 대해 실효성이 ‘없다’와 ‘있다’로 엇갈린 태도를 보이고 있다. 지난 2월 한국교통연구원이 국토부의 의뢰를 받아 작성한 ‘화물차 안전운임제 성과 분석 및 활성화 방안 연구’가 안전운임제의 효력에 대해 분석하는 근거로 쓰이고 있다. 이 연구에 따르면 안전운임제 대상 차량이 포함된 견인형 화물차의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제도 시행 전인 2019년 21명에서 시행 이후인 2020년과 2021년 각각 25명과 30명으로 오히려 늘었다. 교통사고 건수는 690건에서 674건으로 줄었다가 지난해 다시 745건으로 증가했다. 다만 차주들의 업무 시간은 줄었다. 하루 평균 12시간 이상 운행하는 차주의 비율이 컨테이너 운송 차주는 29.10%에서 1.40%로, 시멘트 운송 차주는 50%에서 27.4%로 감소했다. 이 결과를 두고 정부는 사고 건수가 줄지 않았다고 안전운임제의 효력이 없다고 주장한다. 반면 화물연대는 차주들의 업무 시간이 줄었다며 긍정적 효과를 얻었다고 반박한다. 같은 연구로 상반된 주장을 펼치는 것이다. 안전운임제는 시행한 지 3년이 채 되지 않았고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물류량이 정상이 아니었던 기간도 있었다. 이에 따라 앞서 제시한 연구 결과는 분석 기간이 짧아 완전한 근거로 삼기엔 무리가 있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운송 참여자들 사이에서도 안전운임제에 대한 의견이 엇갈린다. 물류 구조는 화주(화물의 주인)가 운송사에 물류를 맡기면 운송사가 다시 화물 차주에게 일감을 맡기는 구조다. 화주와 화물 차주 사이에 수많은 중간 참여자가 존재한다.실제로 안전운임제가 도입됐던 2020년 선사와 포워더(운송 주선인) 등은 제도 도입에 따른 중간 참여자들의 부담을 우려하기도 했다. 또 안전운임제에 해당되는 시멘트협회는 2020년 이후 3년간 1200억원에 달하는 추가 물류비 부담에 시달렸다고 밝히며 안전운임제의 폐지를 요구하는 상황이다. 안전운임제에 대한 의견이 좀처럼 합의를 보지 못하는 상황에서 화물연대의 파업은 7일 기준 14일째에 돌입했다. 이명지 기자 mjlee@hankyung.com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사진)은 9일 민주노총 화물연대가 총파업 철회 여부를 이날 투표를 통해 결정하겠다고 밝히자 정부·여당의 '안전운임제 3년 연장 제안'은 무효가 됐다고 못을 박았다.원 장관은 이날 페이스북에 "화물연대가 주장하는 안전운임제 3년 연장은 11월22일 정부·여당이 국가적 피해를 막기 위해 제안한 적은 있으나, 화물연대가 11월24일 집단운송거부에 돌입했기 때문에 그 제안이 무효화된 것"이라고 밝혔다.이어 "화물연대는 안전운임제 품목 확대 논의를 요구하고 있으나, 품목 확대는 불가하다는 것이 정부·여당의 일관된 입장"이라며 "'선 복귀, 후 대화'라는 정부의 입장은 확고하며, 여기에는 어떠한 조건도 있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그러면서 "국가 경제에 심각한 피해와 국민에 불편을 16일 동안이나 끼치고, 운송개시명령이 두 차례 발동되고 나서야 뒤늦게 현장 복귀가 논의되는 것은 유감"이라며 "오늘 총투표에서 화물연대 구성원들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고 강조했다.전날 화물연대는 민주노총 대전본부 건물에서 중앙집행위원회를 열고 15일째 이어온 총파업을 철회할지 여부를 전 조합원이 참여하는 투표를 통해 이날 결정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화물연대는 투표 결과에 따라 업무를 재개하더라도 정부와 여당을 상대로 '안전운임제 3년 연장안 입법화'와 '안전운임제 품목 확대'는 계속 요구할 계획이다.화물연대는 "안전운임제 일몰을 막기 위해 대승적인 결정을 내렸다"며 "정부와 여당은 당정 협의를 통해 발표했던 안전운임제 3년 연장 약속이라도 조속히 지키라"고 촉구했다.홍민성 한경닷컴 기자 mshong@hankyung.com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의 운송거부 사태는 지난달 24일 파업 돌입 시점부터 노동문제이자, 정치문제였다. 처음부터 더불어민주당이 안전운임제 적용 업종 확대와 일몰 폐지를 거들고 나섰기 때문이다. 노동계 한 관계자는 “예산안과 세제 개편안 등 굵직한 안건을 여야가 주고받는 가운데 안전운임제 확대도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가 화물연대에 있었다”며 “사법처리 경고 등 정부의 강한 압박을 화물연대가 15일간 버틴 이유”라고 말했다.하지만 민주당은 8일 안전운임제와 관련한 정부안을 받아들이며 이 같은 기대를 저버렸다. 정치권에선 ‘법과 원칙에 따른 대응’을 강조한 윤석열 대통령의 일관된 입장이 이번 사태에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진퇴양난 빠진 민주당무엇보다 화물연대 파업 이후 여론이 악화됐다. 파업 이후 여론조사에서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 지지율이 올라가는 동안 민주당은 떨어졌다.데일리안이 여론조사업체 공정에 의뢰해 전국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한 정당 지지율 결과에 따르면 화물연대가 운송거부에 들어간 11월 넷째주 민주당은 45.1%, 국민의힘은 33.6%의 지지율을 나타냈다. 12월 첫째주 조사에서는 국민의힘 41.9%, 민주당 37.9%로 뒤집혔다. 윤 대통령 지지율 역시 41.5%를 나타내 5개월 만에 40% 선을 넘어섰다. 화물연대 이슈가 길어질수록 민주당은 정치적으로 불리한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현행법을 개정하지 않으면 안전운임제가 이달 말 일몰을 맞아 사라진다는 점도 민주당이 입장을 바꾼 이유다. 강경론만 고수하다가는 안전운임제 확대는커녕 정부가 내놓은 안전운임제 3년 연장도 막히는 것이다.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민주당 간사인 최인호 의원은 기자들과 만나 “소위에서 (안전운임제) 품목 확대가 포함된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지만, 이후 안건조정위원회와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법안 처리를 하려면 2주가 지나 일몰이 되는 상황을 맞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노동계 연대도 균열민주당은 이 같은 방침을 지난 7일 화물연대는 물론, 여당 지도부와도 공유했지만 민주노총과는 사전 논의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노총은 8일에도 몇몇 일간지에 화물연대 파업 지지 광고를 게재하고 새로운 투쟁 방침을 내놨다. 여기에는 △8~9일 국민의힘 광역시·도당 시위 △10일 공공운수노조 결의대회 △12일 서비스연맹 결의대회 △14일 2차 총파업 등의 계획이 줄줄이 담겼다.그만큼 민주당에 대한 배신감이 큰 것으로 전해졌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이날 서울 정동 민주노총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민주당의 입장 변화를) 알지 못했다”며 “(민주노총은) 수용하겠다는 입장이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 관계자는 “민주당이 민주노총과 법안 상정에 대해 논의할 의무가 있지는 않다”고 했다. 노동계에선 이번에 표출된 양측 간 불신이 쉽게 해소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추가 업무개시명령으로 압박정부와 여당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노동문제와 관련해 원칙론을 관철한다는 방침이다. 정부는 이날 철강 및 석유화학 업종에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하며 화물연대를 압박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법과 원칙에 따른 엄정 대응 원칙 아래 업무개시명령 미이행 시 강력한 형사고발과 행정처분을 하는 등 끝까지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국민의힘 국토위 의원들도 민주당 발표에 대한 입장문을 통해 “화물연대 파업에 따른 경제적 손실과 사회적 비용은 민주당과 민주노총이 책임져야 한다”고 밝혔다.노경목/곽용희/이유정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