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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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에서 '장애인 지하철 시위'를 둘러싸고 격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장애인 단체의 과격한 시위 방식을 지적하며 "선량한 시민 최대 다수의 불편을 야기해 뜻을 관철하겠다는 시위 방식은 문명사회에서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비판하고 나섰습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이 대표가 장애인에 대한 혐오를 부추긴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전용기 민주당 의원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또 다른 '혐오 타깃'을 설정한 것인가"라며 "시민들 사이의 갈등을 적극적으로 조정하고 해법을 제시하기는커녕 대놓고 갈라치기를 또 시도하고 있다"고 했는데요.

사실 장애인의 시위 방식에 대한 지적이 정치인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낯선 모습입니다. 어떤 이유로든 약자인 장애인과 대립각을 세우는 건 정치적 부담이 크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장애인의 권리 향상은 선진 사회가 지향해야 하는 바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이 대표의 주장이 많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이유입니다.

그렇다고 이 대표의 주장을 혐오로만 치부해서는 곤란합니다. 이 대표 말처럼 출근 시간 장애인 단체 시위로 시민들의 불편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시위를 주도하고 있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는 지난해 12월부터 수도권 지하철에서 20여 차례 기습 시위를 벌였습니다. 이에 따라 최소 15분에서 최대 2시간까지 지하철 운행이 지연됐고, 출근길 시민들이 많은 불편을 겪었습니다.

물론 과격한 방식이 아니면 장애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주지 않는다는 장애인 단체 측 주장도 일견 타당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장애인 단체의 요구가 정당한지 따져보는 일이 필요합니다.
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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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장애인 단체의 요구는 타당한가

전장연은 지난해 12월 장애인의 이동권 보장과 장애인 권리 예산 증액을 요구하며 시위를 시작했습니다. 국회에서 통과한 교통약자법 개정안이 계기가 됐습니다. 개정안에 따르면 버스 대·폐차 시 저상버스 도입을 의무화했는데 시외·고속버스는 제외됐습니다. 시외·고속버스도 저상버스 도입을 의무화하라는 것이 전장연 측 요구입니다.

법안 심사 당시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검토보고서를 살펴봤습니다. 시외·고속버스가 저상버스 의무화 대상에서 제외된 이유는 안전 문제 때문으로 보입니다.

시외·고속버스는 장거리 노선버스인데, 저상버스의 경우 장거리 이동을 위해서는 좌석 안전띠 등 안전설비, 적재함 등의 설치가 필요합니다. 정부는 이를 위해 지난해부터 휠체어 탑승 고속버스 시범사업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국토부는 "2021년 시범사업을 실시하고 있는바 그 결과를 바탕으로 향후 개선방안 마련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검토보고서 역시 시외·고속버스 저상버스 도입과 관련, "교통 약자의 중장거리 이동 편의를 증진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면서도 "현재 국토교통부는 휠체어 탑승 설비를 갖춘 고속버스 운행 시범사업을 실시하고 있어 그 결과를 바탕으로 안전기준, 편의시설 등의 제도 정비에 나설 필요가 있는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습니다.

장애인 단체 입장에서는 충분치 않을 수 있지만, 정부가 손을 놓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전장연 측은 또 장애인콜택시와 같은 특별교통수단의 운영비의 국비 지원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개정안에는 운영비를 국가나 도(道)가 지원할 수 있도록 했는데 이 규정이 법안 심사 과정에서 '해야 한다'는 의무 규정이 아닌 '할 수 있다'는 임의 규정으로 바뀐 것을 문제 삼은 겁니다.

국회 검토보고서는 이에 대해 "보조금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이 장애인특별운송사업비(운영비)를 보조금 지급 제외 사업으로 규정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국비 지원에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인데요.

보조금 관리법 시행령은 지자체 보조금 지급 제외 사업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는 중앙정부의 예산을 효율적으로 집행하고, 지방자치단체가 지방 분권에 따라 지방비를 제대로 부담하라는 취지입니다.

해당 시행령에 따르면 장애인특별운송사업비(운영비)뿐 아니라 결식아동 급식, 저소득 재가 노인 식사 배달, 한부모복지가족시설 운영 등도 국가보조금 지급 제외 대상입니다. 장애인 외 다른 결식아동, 저소득 노인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사업도 보조금을 지원하지 않도록 돼 있는 겁니다. 전장연 측이 특별히 더 장애인특별운송사업비의 국비 지원을 주장하려면 보다 타당한 이유를 제시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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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이준석 주장은 타당한가

이 대표는 SNS에 "소수자 정치의 가장 큰 위험성은 성역을 만들고 그에 대한 단 하나의 이의도 제기하지 못하게 틀어막는다는 것에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이 대표의 이런 주장은 불편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사실입니다. 약자에 대한 연대 의식과 배려는 문명사회에서 당연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시민들이 장애인 시위로 인해 불편을 겪어도 이해하고 감내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시민들의 연대 의식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장애인 단체의 요구가 시민들이 오랜 기간 감당해야 하는 불편에 상응하는지 평가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지금까지 이런 평가를 시도하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약자=선자(善者)'라는 인식이 오랫동안 사회적으로 굳어졌기 때문입니다. 이 대표가 주장한 '성역화'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유입니다.

이 대표가 전장연의 과격한 시위 방식과 관련, "이것이 용납되면 사회는 모든 사안에 대해 합리적 논의와 대화가 아닌 가장 큰 공포와 불편을 야기하기 위한 비정상적인 경쟁의 장이 될 것"이라고 지적한 것 역시 되짚어볼 부분입니다.

다만 이 대표의 일부 주장은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이 대표는 "박원순 시정에서 장애인 이동권을 위해 했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단 이유로 오세훈 시장이 들어선 뒤에 지속해서 시위하는 것은 의아하다"고 했는데요. 이 주장은 사실이 아닐뿐더러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문제가 있습니다. 당 대표로서 오 시장이 약속을 지키도록 촉구하는 게 맞지 '왜 엉뚱한 사람에게 따지냐'는 식은 책임 있는 태도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대표는 또 "(전장연이 시위를 예고한) 지하철 3, 4호선은 서울의 여러 서민 주거 지역을 관통해 도심과 잇는 지하철 노선"이라고 했습니다. 전장연의 시위가 명분이 없음을 지적하는 말이지만, '장애인 대 서민' 구도를 은연중에 강조하려는 의도가 엿보입니다. 이는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장애인에 대한 연대 의식과 배려심을 가진 많은 일반 시민을 모욕하는 말이 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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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민주당은 무엇을 했나

이쯤 하면 어떤 법안이든 단독으로 통과시킬 수 있는 민주당은 무엇을 했는지 궁금해집니다. 전장연 시위를 촉발한 교통약자법 개정안은 여야 합의로 통과된 법입니다. 해당 법안에 찬성한 의원만 227명에 달합니다. 하지만 민주당은 이 대표를 공격하는 데 열을 올리며, '유체 이탈' 식 화법을 쓰고 있습니다.

박지현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지하철을 타지 않는 장애인, 지하철 없는 지역에 사는 장애인도 불편함 없이 이동할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며 "장애인들이 왜 지하철에서 호소하는지 목소리를 제대로 들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지금 필요한 것은 전장연의 시위 중단을 설득할 현실적인 방안이지 '누구나 할 수 있는 듣기 좋은 말'은 아닐 겁니다.

일부 의원은 이 대표를 '혐오 정치인'으로 몰아붙이는 것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이탄희 민주당 의원은 "장애인과 싸울 시간에 불평등과 싸우길 바란다"고 했고, 양이원영 민주당 의원은 "이 대표의 혐오와 갈라치기 정치를 거부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두 의원은 전장연이 문제 삼는 교통약자법 개정안에 찬성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급기야 시민들에게 '불편함을 감수하라'는 훈수까지 나왔습니다. 고민정 민주당 의원은 "서울시에 있는 공공기관과 기업들에 부탁 말씀을 드린다"며 "4호선 노원 도봉 강북 성북 주민과 3호선 고양 은평 서대문 등에 살고 계신 분들의 출근이 조금 늦어도 양해를 부탁드린다"고 했습니다.

국회 내 172석으로, 해결 열쇠를 가진 민주당 의원들이 장애인 단체 시위를 대하는 방식입니다. 장애인 단체가 3개월 동안 시위하도록 내버려 둔 것에 대한 반성의 모습은 찾기 힘듭니다. 시민들의 불편이 계속되는 건 비단 장애인 단체만의 책임은 아닌 것 같습니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