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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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말 기획재정부 팀장 이상 간부들은 ‘비공식 인사평가’를 받는다. 직원들이 선정한 ‘닮고 싶은 상사’, ‘닮고 싶지 않은 상사’ 결과다. 이벤트 정도로 치부하기엔 파급력이 만만치 않다. 결과는 장·차관에게 보고된다. 특정 간부에 대한 관가 안팎의 평판을 좌우하기도 한다.

투표에 대한 평가는 갈린다. 상사에게 반성과 성찰의 기회를 준다는 순기능 때문에 10년 넘게 이어졌다. 반대로 인기 투표로 흐르거나 특정인을 망신주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3번 뽑히면 ‘명예의 전당’

‘닮고 싶은 상사’와 ‘닮고 싶지 않은 상사’ 투표는 무보직 서기관(4급) 이하 기재부 직원들이 5명(국장급 이상 2명, 과장·팀장급 3명)씩 적어내는 방법으로 진행된다. 노조는 ‘득표 순’으로 닮고 싶은 국장 5명과 과장급 11명을 공개한다. 닮고 싶지 않은 상사 명단엔 투표 인원의 10% 이상이 적어낸 국장(과장은 5% 이상)이 오른다. 지난 1월 9~11일 진행된 ‘2016년 닮고 싶은 상사’ 투표엔 무보직 서기관 이하 기재부 직원 950명 중 약 85%인 799명이 참여했다.

3회 이상 ‘닮고 싶은 상사’로 뽑히면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리고 투표 대상에서 제외된다. 꾸준히 신망을 얻은 간부라서 더 이상의 투표가 무의미하다는 판단에서다. 기재부 현직 중엔 송인창 국제경제관리관(1급), 이호승 경제정책국장, 이승철 재정관리국장, 임재현 소득법인세정책관 등이 영광의 주인공이다.
[대한민국 공무원으로 산다는 건] "장·차관 승진 가늠자"vs"인기투표 불과"
◆노조 찾아와 해명하기도

닮고 싶은 상사에 선정된 간부들은 ‘훈장’을 받은 것처럼 뿌듯해한다. 업무능력과 인간성을 함께 인정 받았다는 자부심을 느낀다고 이야기한다. 투표 결과가 ‘장·차관 승진 가늠자’란 말도 나온다.

‘피하고 싶은 상사’를 공론화 할 수 있다는 것도 순기능으로 꼽힌다. 한 기재부 국장은 “예전엔 피하고 싶은 과장이나 국장들이 있더라도 말은 못하고 속으로만 끙끙 앓았다”며 “닮고 싶지 않은 상사를 뽑기 시작한 이후 조직에서 출신 지역·학교를 들먹이며 무시하는 간부가 없어졌다는 얘기도 나온다”고 전했다. 기재부 노조 관계자는 “부정적인 결과를 받은 간부가 노조에 직접 찾아와 해명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며 “간부들도 투표 결과에 상당히 신경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순기능 때문에 기재부를 따라한 곳도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3년에 한번 씩 직원들에게 20개 정도의 문항을 주고 답변을 받아 ‘함께 일하고 싶은 상사’를 선정한다. 공정위 노조 관계자는 “올해도 직원 대상 설문을 실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일하고 싶은 후배’도 투표해야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직원들에게 인간적으로 잘해주는 사람이 좋은 평가를 받는 ‘인기투표’로 흐를 가능성이 있어서다. 지난 1월 진행된 투표 결과를 놓고 특정 실·국 직원들이 승진을 앞둔 상사에게 표를 몰아줬다는 얘기도 나왔다.

닮고 싶은 상사 선정 경험이 있는 한 기재부 과장은 “선정 이후 주변에서 ‘후배들에게 잘해주기만 하는 것 아니냐’는 핀잔을 들었다”고 말했다. 한 경제부처 과장은 “가끔 업무능력과 무관한 결과가 나오는 걸 보면 ‘없어져야 하는 것 아닌가’란 생각이 든다”며 “과연 어떤 리더가 바람직하냐에 대한 기준도 다양할 수 밖에 없지 않느냐”고 했다. 평가 결과에 너무 큰 의미를 둘 필요는 없다는 지적이다.

형평성 차원에서 ‘같이 일하고 싶은 후배’, ‘같이 일하기 싫은 후배’를 선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한 기재부 간부는 “업무 능력이나 근무태도 등과 관련해 반성해야 할 사무관 이하 직원들도 많다”며 “하향평가 결과를 공개해 후배들에게도 자극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