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료 출신인 조환익 한국전력 사장은 공직을 떠난 뒤 공공기관장만 세 번 거쳤다. 2006년 산업자원부(현 산업통상자원부) 차관 퇴임 후 2007년 한국수출보험공사(현 한국무역보험공사) 사장, 2008년 KOTRA 사장, 2012년 한전 사장에 차례로 올랐다. 차관이 되기 전 한국산업기술재단(현 한국산업기술진흥원) 사무총장도 거쳤기 때문에 정확히는 네 번의 산하기관장을 한 셈이다. 공무원들은 조 사장이 마지막 ‘쓰리턴’ 세대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입을 모은다. 쓰리턴이란 고위 관료로 퇴직하면 세 번 정도 산하기관장을 할 수 있다는 공무원 세계의 은어다. 산업부 관계자는 “현 정부 들어 세월호 사태 등을 계기로 공무원의 산하기관 재취업이 힘들어지면서 쓰리턴은 고사하고 ‘원턴’도 힘든 분위기”라고 말했다.
[대한민국 공무원으로 산다는 건] '쓰리턴'의 추억…"예전엔 퇴직하고 기관장 세 번씩 했는데"
◆아 옛날이여…

공무원들이 퇴직 후 산하기관으로 가기 어려워진 이유는 공직자의 취업제한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공직자윤리법이 계속 개정됐기 때문이다. 2011년까지는 공무원이 퇴직 전 3년 이내 맡았던 업무와 관련된 기관에 퇴직 후 2년 동안 취업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해 법이 개정되며 업무 연관성 판단 기준이 퇴직 전 3년에서 5년으로 늘었다.

지난해부터는 취업제한 기간도 퇴직 후 2년에서 3년으로 연장됐다. 2급 이상 공무원은 업무 관련성 판단 기준을 자신의 담당 업무뿐 아니라 소속 기관 전체의 업무로 확대했다. 다만 공직자윤리위원회 승인을 받으면 취업제한 기준을 비껴갈 수 있다. 공직자윤리위의 취업심사 탈락률은 2011년 5.7%에서 지난해 20.8%로 높아졌다.

선배들이 퇴직 후 곧바로 산하기관장이 돼 높은 연봉으로 노후 걱정 없이 사는 걸 지켜봤던 후배 공무원들로선 그야말로 ‘격세지감’이다. 특히 산업부는 전 부처 중 가장 많은 41개의 산하기관을 거느리고 있다. 산업부에서 1급(실장급) 이상을 하면 산하기관 사장으로, 그보다 아래 직급이라도 부사장으로 가는 게 일반적이었다. 산업부 관계자는 “지금은 실장으로 퇴직해도 직업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고 전했다.

금융위원회도 사정은 비슷하다. 금융위가 2008년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에서 떨어져 나오기 전에는 ‘모피아(옛 재무부+마피아)’가, 그 이후에는 ‘금피아(금융위+마피아)’가 금융 공기업뿐 아니라 주요 시중은행장 자리까지 독식했다. 하지만 지금은 예전만 못하다.

◆“관료 전문성 인정해줘야”

그렇다고 공무원들 입장에선 대놓고 “우리 몫을 달라”고 요구할 처지가 못 된다. 낙하산 인사의 폐해가 적지 않았던 데다 국민 시각에서도 공무원들의 퇴직 후 재취업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다만 관료의 전문성까지 부정하는 것에 대해선 불만이 있다. 한 경제부처 공무원은 “공기업 대부분은 공적 투자 기능을 수행하는 곳이 많은 만큼 풍부한 행정경험을 가진 공무원이 전문성에선 가장 앞선 측면이 있다”며 “선진국에서도 에너지 관련 부처에 몸담았던 이들이 에너지 분야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로 가는 일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관료들의 취업제한으로 업계 전문가들이 등용된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전문성이 떨어지는 ‘정피아(정치인+마피아)’들이 득세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채이배 국민의당 의원에 따르면 금융공공기관 및 공공기관이 지분을 보유한 금융회사 27곳의 현직 임원 255명 가운데 정피아는 53명으로 관료 출신(44명)보다 많았다. 경제부처 관계자는 “전문성이 있는 관료 출신은 산하기관에 못 가도록 막아놓고 정치인은 취업에 아무런 제한이 없다는 건 아이러니”라고 말했다.

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