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식의 정치가 뭐길래] 반반(半半)전략 펼치고 떠난 반기문 UN사무총장
반반(半半)전략. 반기문 UN사무총장이 지난 25일 방한해 30일 출국할때까지 보여 준 대선 관련 언행을 두고 정치권의 한 인사는 이렇게 평가했다. 반 총장이 대선에 출마한다고 명확하게 밝히지는 않았지만 실제 행보 하나 하나가 대선 출마를 염두에 둔 것이라는게 이 인사의 주장이다.

지금까지 반 총장의 화법은 모호했다. 2009년 10월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위원들과 만찬에서 “국내 정치에 관심이 없다”고 했다. 2014년 11월엔 대권 도전설에 대해 “전혀 아는 바도 없고 사실이 아니다”고 해명했다. 지난해 4월엔 “은퇴 후 ‘008 요원’으로 일하거나 아내와 근사한 식당에 가 맛있는 요리를 먹고 싶다”고 했다. 대선에 출마하지 않을 것이라는 해석들이 나왔다.

그러다가 이번 방한에선 대선 출마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내는 언행을 보였다. 지난 25일 관훈클럽 간담회에서 “한국인으로서 어떤 일을 할지 임기 종료 후 고민해 결심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미국 대선 후보도 70세가 넘는다, 국민 통합할 지도자가 나와야 한다”며 출마에 대한 강한 뜻을 나타냈다.

대선 출마 선언으로 해석되자 한 발 뺐다. 그는 지난 26일 “과잉 해석된 것 같다”고 했다. 30일 경주에서 열린 ‘제66차 UN NGO(비정부기구) 콘퍼런스’에 참석, 기조연설을 한 뒤 기자회견을 통해서도 “관훈클럽 비공개 간담회를 했는데 그런 내용이 좀 과대확대, 증폭이 된 면이 없잖아 있어, 저도 좀 당혹스럽게 생각하는 면이 많다”고 했다.

또 “국내에서 행동에 대해 과대해석하거나 추측하거나 이런 것은 좀 삼가, 자제해 주시면 좋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제가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이냐, 이런 데 대해 많이 추측들하시고, 보도하시는데 제가 무슨 일을 할 것인지는 저 자신이 제일 잘 아는 사람일 테고, 제가 결정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방한 중 활동과 관련해 오해가 없으시기를 바란다”며 “정치적 행보와 전혀 무관하게 오로지 UN 사무총장으로서 국제적 행사에 참여하고, 주관하기 위해(한국에) 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이 자리에서 분명히 말씀드리는 것은 저는 아직도 (임기가) 정확히 7개월이 남았다. 제가 마지막까지 잘 마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할 것”이라며 “국민 여러분께서 제가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도록 많이 도와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렇지만 실제 반 총장의 방한 동선을 살펴보면 이미 대선주자로서의 행보를 보여줬다는 게 일반적 평가다. 그가 방한해서 만난 사람들은 UN사무총장으로서가 아니라 대선과 관련있는 인사들이다. 지난 28일 ‘충청권 맹주’였던 김종필 전 국무총리를 만났다. 또 고건 노신영 이현재 한승수 전 총리 등을 포함한 각계 원로 13명과 만찬을 함께했다. 이 가운데 평소 대선과 관련해 반 총장에게 조언하는 인사들이 포함돼 있다.

다른 지역도 아닌 TK(대구·경북)를 방문한 것을 두고도 대선과 연관이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그의 고향인 충청과 TK 연대를 의식한 행보라는 것이다. 경북 안동 하회마을을 찾아 ‘류성룡 마케팅’을 활용했다. 나무 중 제왕이라고 하는 주목을 기념식수했다. 주목은 경상북도와 하회마을이 준비했지만 반 총장이 이를 수용했다는 것도 정치적 함의가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하회마을 만찬에서는 경상북도 국회의원 수와 경북 도의원 수, 정당 분포에 대해 물어봤다.

대선주자 출마에 대한 강한 의지와 행보를 드러내 놓은 뒤 “과대보도를 자제해달라”고 한 것에 대해 여러 해석이 나온다.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한 각본대로 움직였다는게 정치권의 일반적인 분석이다. 일종의 ‘치고 빠지기 전략’이 아니냐는 것이다. 관훈클럽 간담회 발언이 대권도전을 시사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면서 큰 파장이 일자 수위조절을 하려는 의도라는 얘기다.

12월 그만두는 UN사무총장직을 수행하는 도중에 대선 출마를 언급하는 것이 부담이 될 수 있다. 총장직을 대선으로 가는 징검다리로 삼는다는 비판을 받을 소지가 있다. 대선이 1년 7개월 남았는데 출마 여부를 공식적으로 밝히면 검증 공세에 시달릴 수도 있다.

그렇다고 완전히 발을 빼면 대선 주자로서 존재감을 잃어버릴 수 있다. 때문에 한발은 대선에 걸쳐놓고 존재감을 부각시키면서 한발은 ‘현직 충실’이라는 일종의 ‘반반전략’을 택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홍영식 선임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