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UN 사무총장은 26일 서귀포시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주포럼에서 기조연설을 통해 북한에 “핵·미사일 도발을 중단하고 국제 의무를 준수하는 방향으로 돌아오라”고 촉구했다. 전날 강력히 시사한 대권 도전에 대해서는 “(언론의) 확대해석”이라며 일단 한 발 빼는 모습이었다.

그는 “북한의 핵 개발은 안보에 저해될 뿐이고 북한 주민에게 상처만 남기고 있다”며 “한반도 갈등이 고조된다면 동북아시아와 그 너머까지 어두운 그림자가 깔릴 것”이라고 했다. UN 안전보장이사회가 북한 제재를 결의한 것을 언급하며 “(각국의) 결의안이 완전히 시행될 때 한반도 비핵화가 더욱 촉진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북한의 어린이들은 필요한 것을 공급받지 못하고 있으며 인권은 체계적으로 침해당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북한은 이를 반드시 시정해야 하며, 대화를 향한 길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권을 비롯한 국내 정치 상황에 대한 언급은 기조연설에 포함되지 않았다.

반 총장은 전날 제주 롯데호텔에서 열린 관훈클럽 포럼에서 중견 언론인들과 만나 “사무총장 임기가 끝나는 내년 이후 한국 시민으로서 어떤 일을 해야 할지 고민해 결심할 것”이라고 대권 도전 의지를 시사하는 ‘작심 발언’을 했다. 이어진 홍용표 통일부 장관 주최 만찬에서도 사진기자들 앞에서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귀엣말을 하는 등 대선 출마에 힘을 싣는 듯한 모양새를 연출했다.

26일 반 총장 및 외교부 전직 고위관료 등과 조찬을 함께한 나경원 새누리당 의원은 기자들에게 “반 총장이 ‘대권 출마를 결심한 듯이 보도됐는데 확대해석, 과잉인 것 같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현직 UN 사무총장으로 부적절한 발언이라는 비판이 다수 제기되자 하루 만에 발을 빼는 듯한 행동을 보인 셈이다.

이날 오전 서울로 돌아간 정 원내대표도 ‘반 총장과 대권 얘기를 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런 얘기를 어떻게 하느냐”고 부인했다. 하지만 현안이 산적한 정 원내대표가 굳이 반 총장을 만나기 위해 제주를 찾고 가까운 모습을 연출한 것 자체가 반 총장의 출마 여부와 무관치 않다는 해석이 나왔다.

제주=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