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갈길 먼 재외 투표…10% 투표율 '마의 벽'인가
전체 재외 유권자 3.2% 투표…18대 대선 7.1% 가장 높아
등록자 대비 41.4%로 역대 최저…"투표 편의 확 올려야"

4·13 총선 재외국민 투표에서는 머나먼 이국땅에서도 한 표를 행사하려는 재외유권자의 '장거리 투표'가 이어졌다.

그러나 투표가 마감된 5일(이하 한국시간) 등록 유권자 대비 재외선거 투표율이 41.4%로 집계되면서 19대 총선(45.7%)보다 투표율이 올라가리란 애초 기대에 못 미쳤다.

이번에는 재외 투표소가 늘어나고 인터넷 사전 등록도 허용됐으나 미지근한 투표율을 끌어올리는 데는 크게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재외유권자가 던진 표는 오는 13일 총선일 개표에 맞춰 한국으로 속속 도착한다.

점차 재외유권자의 비중이 높아져 차기 대선에서는 '캐스팅 보트'가 될 수도 있는 만큼 우편 투표, 인터넷 투표 등을 부분 도입할지에 대한 논의도 불붙게 됐다.

◇ 재외선거 절차 어떻게 달라졌나
이번 재외선거에서는 절차가 크게 간편해져 실제 투표율도 다소 올라가기란 기대가 컸다.

재외투표는 현지시간 기준으로 지난달 30일부터 4일까지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113개국에서 치러졌다.

한국시간 기준으로는 30일 오전 5시 뉴질랜드에서 시작돼 5일 정오 하와이에서 마감했다.

재외투표소는 지난 2012년 19대 총선보다 40곳 많은 198곳으로 늘어났다.

투표하기 전 필요한 사전 등록도 예전과 달리 인터넷으로도 가능해졌다.

이처럼 절차가 간소화한 덕분에 사전 등록 유권자는 19대 총선보다 24.8% 증가한 15만4천217명에 달했다.

이는 국내를 포함한 총유권자(4천210만398)의 3.7%를 차지하는 것이다.

하지만 5일 마감 결과 실제 투표에는 6만3천797명이 참여해 투표율은 41.4%에 머물렀다.

19대 총선(45.7%), 18대 대선(71.1%)과 비교하면 역대 재외투표 중 가장 낮은 것이다.

전체 재외유권자(198만여 명) 중에서는 3.2%가 투표에 참여한 것이어서 동포 사회에서 기대했던 '10%의 벽'을 넘지 못했다.

이는 19대 총선(2.5%)보다는 소폭 올랐으나 18대 대선(7.1%)은 여전히 밑도는 수치다.

국내에서도 대선 투표율이 총선 때보다 높지만 재외선거에서는 그 차이가 더욱 크다.

국내 주민등록이 남아 있거나 국내 거소신고를 한 국외부재자는 총선 때 지역구 투표도 할 수 있으나 영주권자는 정당별 비례대표 투표만 허용되기 때문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재외선거 투표자로만 보면 6만3천797명에 달해 19대(5만6천456명)에 비해 13%가 증가했다"면서 "재외선거인 영구명부제 도입, 인터넷 신고·신청 확대, 투표소 확대 등으로 투표자가 증가했다"고 평가했다.

◇ 재외유권자 표심 왜 미지근할까
재외투표율이 저조한 것은 여전히 투표 편의성이 낮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미국·일본 등에서는 대도시에 두 곳 이상의 투표소가 마련된 곳이 많지만 칠레·네팔처럼 '1국가 1투표소'인 지역이 대부분이다.

이 지역에서 투표하려면 한나절 이상을 투자해야 해 생업에 매달리는 동포나 시간이 빠듯한 유학생에겐 부담이 크다.

칠레의 한 동포는 "칠레는 지형이 세로로 길쭉한 탓에 한 유권자는 수도 산티아고의 투표소에 가느라 왕복 5시간을 운전했다고 한다"면서 "동포 중에는 자영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많아 투표하느라 가게 문을 닫아야 한다면 큰 부담을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

여전히 고국 정치에 재외유권자의 관심이 적은 것도 원인이다.

정치권도 재외투표를 코앞에 두기까지 선거구를 획정하지 못해 우려를 키우기도 했다.

전남대 세계한상문화연구단 지충남 교수는 "정치 자체에 무관심한 재외유권자도 있겠지만 정치권에서 재외동포 비례대표를 한 명도 내놓지 않은 것은 무관심을 자초한 것 아니겠냐"면서 "한인 사회도 고국에 제 목소리를 내려면 투표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는 인식을 공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찌감치 선거 홍보가 이뤄지지 않는 것도 투표율을 끌어내리는 원인이다.

실제로 미국, 남미 등의 일부 투표소에서는 신분증 등 서류 미비로 발길을 돌려야 했던 유권자가 잇따라 나왔다.

괌에 거주하는 한 동포는 "고령 이민자, 은퇴 이민자가 많은 지역이어서 투표를 하고 싶어도 '선거가 어렵다'는 하소연이 많이 나온다"면서 "한국과 달리 해외에서는 아무래도 정확한 선거 정보나 후보자 공약을 접하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외교 상황에 따라 거주국에서는 투표하지 못하는 유권자도 있다.

대만, 쿠바 등 우리나라와 수교를 맺지 않은 국가에서는 국경을 넘어가 투표해야 하는 실정이다.

◇ 우편 투표·인터넷 투표 과연 필요할까
재외유권자가 국내 투표에 참여한 것은 2012년 19대 총선, 18대 대선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다.

하지만 투표 편의성이 떨어진다는 불만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여야가 재외유권자의 표심을 잡고자 이번 재외투표에서 사전 유권자 등록·신고를 인터넷으로도 가능하게 한 것도 이러한 배경에서다.

그러나 5일 마감 후 집계된 실제 투표율은 여전히 저조한 것으로 나타나 일부 국가에 제한적으로 우편 투표나 인터넷 투표를 도입하자는 주장에 한층 힘이 실리게 됐다.

지 교수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국 가운데서는 재외선거에서 우편 투표를 허용한 국가가 대부분이고 일부 국가는 전자 투표도 도입했다"면서 "우리나라는 아직도 방문 투표만 실시하는 만큼 명의 도용 등의 우려를 철저히 통제한다는 전제 아래 제한된 국가에서 투표 참여를 확 끌어올리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재외투표에 막대한 혈세가 들어가 '고비용 저효율'을 되풀이한다"는 비판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선 아예 해외선거구를 별도로 신설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대전대 김종법 교수는 "현행 방식에서는 아무리 투표 편의성을 높인다고 해도 투입되는 예산에 비해 충분한 효과를 끌어내기 어려울 것"이라며 "해외선거구를 별도로 설립하고, 재외선거를 통합 관리하는 기구로 '재외국민관리청'(가칭)을 세우는 방안 등을 생각해볼 만하다"고 제안했다.

(서울연합뉴스) 신유리 기자 newglas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