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이른바 ‘공천 옥새 파동’ 과정에서 비박근혜계가 요구한 최고위원회의 개최를 거부하고 자신의 지역구인 부산 영도로 내려가 주목을 받았다.

정치 거물들은 이렇게 정치적 고비 때 고향을 자주 찾았다. 대표적 사례가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마산행(行)이다. 1988년 총선에서 YS의 통일민주당은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평민당에 밀려 제2야당으로 내려앉았다. 정국 주도권은 DJ가 쥐었다.

1991년 1월 노태우 대통령의 민정당, 김종필 총재의 공화당과 3당 합당을 결행했다. YS는 3당 합당으로 생긴 민자당 대표를 맡았다. YS는 호랑이 잡으러 호랑이굴에 들어간다고 했지만 만만찮았다. 내각제 개헌 파동으로 계파 갈등은 극한으로 치달았다. YS는 내각제 합의각서가 공개되자 당무를 거부하고 경남 마산에 내려갔다. ‘정치 사보타지’를 결행한 것이다. 노태우 당시 대통령이 내각제 추진 포기 약속을 하면서 파문은 일단 가라앉았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1987년 6·29선언으로 사면된 뒤 고비 때마다 정치적 고향인 광주를 방문해 메시지를 던졌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2년 대선 몇개월을 앞두고 지지율이 급락했다. 당시 새천년민주당 내에서 대선 후보 교체론이 터져 나오면서 위기를 맞자 경남 김해 선영을 찾아 각오를 다지기도 했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지난해 12월14일 안철수 의원(현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이 탈당하자 당무를 중지하고 어머니가 살고 있는 부산 영도로 내려가 이틀 간 정국 구상을 하고 서울로 돌아왔다. 안 의원도 문 전 대표에 이어 고향인 부산으로 내려가 탈당의 불가피성을 역설하기도 했다. 유승민 무소속 의원은 새누리당 공천 파동 때 자신을 공천 배제하는 문제로 논란이 일자 고향인 대구로 내려가 자택에서 1주일 넘게 칩거했다.

정치 거물들의 고향행은 정치 마케팅의 일환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치적 항거의 표시로 이만한 이벤트가 없다는 것이다. 서울을 떠나 지방으로 가는 것 자체가 여차하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다는 함축적인 의미가 있다는 게 정치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지방행은 여론의 주목을 확 끌면서 전 국민적인 관심 대상이 된다. ‘사보타지’하는 정치인들의 한마디 한마디가 언론에 크게 보도된다. 때문에 항거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은 바짝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홍영식 선임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