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대통령 대국민 직접정치·서명 확산에 일부 법안 여야 접근
'무능' '비생산' 국회 비판 여론에 선진화법 반대여론도 높아져
靑 "野, 언제든 돌변할 수 있어" 경계…핵심법안 일괄처리 원칙 강조


"대통령이 더이상 국회에 부탁하고 기대하기도 힘든 상황인데 결국은 국민들께서 나서고 계신다."

박근혜 대통령이 22일 청와대에서 열린 외교·안보부처 업무보고에서 현 정국상황을 진단하듯 내뱉은 말이다.

이를 두고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입법마비 식물국회에서 대통령도 더 이상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었는데 결국 국민 여론이 국회를 움직여가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 말씀 아니겠는가"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지난 13일 대국민담화에서 경제·안보 더블위기론을 내세웠고, "위기상황의 돌파구를 찾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바로 국민"이라고 호소했다.

이어 박 대통령은 지난 18일 '민생구하기 입법촉구 1천만 서명운동'에 동참하는 이른바 '서명정치'로 행동에 나섰다.

당시 박 대통령은 "국회가 역할을 못하니 국민이 바로 잡으려는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를 서명참여의 사유로 내세웠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서명동참은 "관제 여론조작"이라는 야당의 반발을 불러왔고, 학계에서는 "대의 민주주의 원칙을 훼손했다"는 비판론을 내놓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입법을 촉구하는 서명은 경제계를 중심으로 확산됐고, 서명운동 5일째인 이날 오전 서명자 수는 15만명을 넘어섰다.

여기에는 야권진영에 자리잡은 비판론과 별개로 대통령의 서명정치가 경제위기 상황을 체감하는 경제계의 호응과 보수층의 결집을 이끌어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리얼미터가 지난 19일 박 대통령의 서명참여를 놓고 여론조사(표본오차 95% 신뢰수준 ±4.3% 포인트)를 실시한 결과, '잘한 것'이라는 의견이 47.7%, '잘못한 것'이라는 의견이 44.0%로 찬반 결집력이 팽팽하게 나타났다.

특히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으로 나뉜 야권이 중도층 탈환 경쟁을 벌이는 가운데 기업활력제고특별법(일명 원샷법)과 북한인권법 처리에 전향적 태도를 보이는 것에는 서명운동 확산이 압박으로 작용했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갤럽의 이날 여론조사 결과 식물국회 원인을 제공했다는 비판을 받는 국회선진화법(현행 국회법)에 대해 반대의견이 46%로, 찬성률(39%)을 앞선 것도 입법마비 상황에 대한 비판론이 커지고 있다는 반증으로 볼 수 있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박 대통령의 서명동참은 스스로 결정한 사안"이라며 '관제운동' 프레임에 선을 긋는 한편, "대통령의 절박한 호소에 여론이 움직이는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다만, 청와대는 야당이 원샷법 등 일부 법안에 대해 처리의사를 보이고 있지만, "언제든지 야당은 돌변할 수 있다"며 신중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총선을 앞두고 중도층 표심을 잡기 위한 야당의 '액션'에 그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노동개혁 4개 법안 등 핵심법안의 일괄처리가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과는 큰 차이가 있다는 게 청와대의 판단이다.

한 관계자는 "야당이 마지못해 협상장에 끌려오는 모양새"라며 "노동개혁법 등의 일괄처리가 필요한 만큼 전체적인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여권 내에선 박 대통령이 핵심법안 통과를 위해 국민에 호소하는 '대국민 정치'를 중단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지난 13일 대국민담화 말미에 "욕을 먹어도, 매일 잠을 자지 못해도, 국민을 위해 최선을 다할 수 있으면 어떤 비난과 성토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는 박 대통령의 언급이 결코 '빈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박 대통령은 옛 한나라당 대표 시절 53일간 '사학법 개정 반대 장외투쟁'에 나섰던 것처럼 핵심법안 처리에 절박한 심정과 굳은 각오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정윤섭 기자 jamin74@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