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딴 곳 바라보는 여야 대표 >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앞줄 왼쪽)와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18일 국회 의원회관 대강당에서 거행된 이만섭 전 국회의장 영결식에서 각각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다. 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
< 딴 곳 바라보는 여야 대표 >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앞줄 왼쪽)와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18일 국회 의원회관 대강당에서 거행된 이만섭 전 국회의장 영결식에서 각각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다. 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
국회법 36조는 ‘상임위원회는 그 소관에 속하는 의안 등의 심사를 행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상임위의 심사·의결과 법제사법위원회의 자구·체계 심사를 거쳐 본회의에서 최종 통과시키는 것이 정상적인 입법 과정이다. 하지만 최근 국회에서는 여야 지도부가 법안 처리에 합의하면 상임위는 형식적으로 회의를 열어 법안을 의결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상임위 통과 법안도 제동

[무너진 국회 상임위 중심주의] 여야 지도부 '법안 거래'…'거수기'로 전락한 상임위
상임위 무력화의 주범은 여야 지도부의 법안 주고받기다. 여야 지도부가 각자 상대방이 원하는 법안 처리에 협조해 주기로 ‘거래’를 하고 상임위는 그저 이를 추인해 주는 ‘거수기’ 역할만 하는 것이다.

지난 3일 국회를 통과한 관광진흥법 개정안과 대리점거래 공정화법이 이런 과정을 거쳤다. 당시 여야 원내대표는 여당 중점 법안인 관광진흥법과 야당 중점 법안인 대리점거래 공정화법을 함께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대리점거래 공정화법을 소관하는 정무위원회는 여야가 회의 개최조차 합의하지 못하고 있다가 양당 원내대표 합의가 이뤄지자 회의를 열어 법안을 통과시켰다. 관광진흥법은 소관 상임위인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형식적인 의결조차 거치지 않았다. 국회의장 직권상정을 통해 바로 본회의에서 처리됐다.

상임위에서 여야 의견 접근이 이뤄진 법안도 지도부가 제동을 걸곤 한다. 환경노동위원회는 지난 4월 최저임금법과 고용보험법 개정안을 의결해 법사위로 넘겼다. 하지만 당시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관광진흥법이 통과될 때까지 최저임금법과 고용보험법을 처리해선 안 된다”고 막아섰다. 야당이 원하는 최저임금법·고용보험법을 여당이 원하는 관광진흥법과 연계하기 위해서였다.

지난 7월 추가경정예산을 심의할 땐 항목별 증·감액 규모까지 여야 지도부가 결정했다. 예산을 전문적으로 심의하기 위해 구성한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허수아비가 됐다.

◆국회선진화법 시행 뒤 심화

국회의원들은 한국 정치권의 뿌리 깊은 당론 우선 풍토를 극복하지 못하면 상임위 중심주의를 정착시키기 힘들다고 지적한다. 상임위 간사를 맡고 있는 새정치민주연합의 한 의원은 “당 차원에서 특정 법안에 찬성이나 반대 방침을 정하면 상임위 소속 의원들도 따라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당 차원에서 반대하는 법안에 대해선 상임위를 아예 보이콧하는 일까지 일어나고 있다.

국회선진화법 시행 뒤 상임위가 무력해지는 현상이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는 것이 정치권의 평가다. 국회선진화법은 상임위에서 여야가 이견을 보이는 법안은 상임위 또는 국회 재적 의원의 60% 이상이 동의해야 본회의에 직권상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여당으로선 상임위에서 야당의 반대에 막힌 법안을 처리하기 위해 지도부 협상이라는 우회로를 택할 수밖에 없다. 야당도 지도부 협상을 통한 법안 처리가 나쁠 것이 없다. 여당이 원하는 법안에 자신들이 원하는 법안을 연계하는 주고받기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상임위 역할은 더욱 약해지는 악순환이 일어난다.

쟁점 법안을 논의한다는 명목으로 설치하는 각종 특별위원회와 태스크포스(TF)도 상임위 기능을 약화시키는 한 요인이다. 일반적으로 특위와 TF는 당 대표나 원내대표가 위원을 선임한다. 상임위에 비해 당 지도부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는 구조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상임위에서 논의해도 되는 일인데 특위를 설치하고 위원을 선임하느라 시간만 허비하는 일이 많다”고 말했다.

유승호/박종필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