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에서는 주먹구구 예산 심의 논란은 거의 없다. 제도적으로 부실 심의를 막는 장치가 마련돼 있기 때문이다. 엄격한 심사로 ‘밀실 야합’이란 말은 찾아볼 수 없다.

영국의 경우 정부가 사전예산보고서를 발표하는 11월부터 예산안 심의가 시작된다. 하원의 재무위원회는 이 보고서를 학계, 민간 전문가 등과 검토하고 이를 바탕으로 정부는 이듬해 3월 최종 예산안을 하원에 제출한다. 하원은 두 번의 독회, 위원회 검토, 세 번째 독회 등을 거친다. 보통 7월에 예산안은 최종 확정돼 의결된다. 즉 8~10월 3개월을 빼곤 의회에서 예산안 심의가 계속되기 때문에 졸속 심의가 불가능한 구조다.

영국 보수당의 존 휘팅데일 하원의원은 “하원에서 철저하게 논의하고 정부가 다수당인 내각책임제이기 때문에 심의가 지연돼 처리시한에 쫓기는 일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의원들이 지역주민을 위해 선심성 예산을 추가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제도적으로 정부가 제시한 예산액을 깎을 수는 있어도 증액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프랑스에서도 예산안 심의로 정쟁이 발생하는 일은 거의 없다. 행정부 권한이 의회보다 강한 이유도 있지만 조용한 예산안 처리가 프랑스 의회의 전통이다. 의회의 예산안 수정 권한이 제한적이다. 세입의 증액, 세출의 삭감만 가능하다. 쪽지예산은 제도적으로 불가능하다.

반면 독일 의회의 예산안 심의 권한은 막강하다. 연방하원 예산위원회는 41명의 위원으로 구성돼 있다. 상임위원회 중 최대 규모다. 집권당이 예산위원회 구성원의 과반을 차지해도 예산위원회 위원장은 제1야당에서 맡는다. 예산안을 짜는 정부는 물론 야당도 최종안에 책임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정부는 4월부터 하원과 부처별 예산을 협의하고 12월에 예산안이 최종 의결된다. 1년 중 3개월을 빼고 수시로 예산안을 심의하기 때문에 예산안 검토가 꼼꼼할 수밖에 없다. 스웨덴은 예산심의를 TV로 생중계한다.

특별취재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