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얘기가 나오자 김진선 지사의 얼굴은 떨렸다. 진눈깨비가 거세게 내리던 어느날 하굣길.너무 추워 고개를 푹 파묻고 걸어오던 어린 김 지사는 거동하기도 불편한 몸을 이끌고 동구 밖까지 마중나온 어머니를 만났다. 초등학교에서 집까지 5리.어머니는 궂은 날씨에 집으로 돌아오는 아들이 걱정스러워 포대기를 쓰고 기다리셨던 것이다. "진선아." 소년은 눈을 찌르는 진눈깨비 사이로 어머니 목소리를 들었다. "엄마~." 아들을 본 어머니는 가슴에 소년의 머리를 묻고 "춥지" 했다. 어머니는 아들을 업었다. "어머니 등이 그렇게 따뜻할 수 없었어요. 그때 처음 눈물을 흘렸던 거 같아요. " 김 지사는 어머니에게 업혀본 게 이때가 처음이었고 너무 좋았다고 기억했다.

어머니는 평생 지병으로 고통 속에 사셨다. 김 지사 3형제는 초등학교 때부터 주사 놓는 법을 익혔다. 지병 때문에 급할 때 서둘러 주사를 놔드려야 했기 때문이었다. 늘 아팠던 어머니는 52세에 작고했다.

김 지사는 "아버지 몰래 월남 파병에 자원했는데 1년 후에 돌아와 보니 아버지 머리가 하얗게 변해 너무 죄스러웠다"고 회고 했다. 아들이 몰래 사지에 간 뒤 하루도 편하게 지내지 못했다는 것.행시에 합격한 후 사무관 4년차 때 아버지는 떠났다.

이후 김 지사는 버릇이 하나 생겼다. 상가에 가면 상주에게 "고인의 연세가 몇이냐"고 꼭 물어본다. 부모님을 오래 모시고 사는 사람이 가장 부럽다는 김 지사는 "따뜻했던 기억이 남아 있는 초등학교 시절로 한번만이라도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