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 7개월반만에 노무현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재신임을 묻겠다"며 초강수를 들고 나왔다. 헌정사상 초유로, 대통령 스스로가 이처럼 대통령직을 배수진으로 정면돌파에 나섬에 따라 정치권은 물론 국정운영에 엄청난 후폭풍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침체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어려운 경제상황과 함께 앞으로 북핵문제와 이라크 파병, 한ㆍ미간 군사협력, 정치개혁, 내년 총선 등을 감안할 때 재신임 선언으로 상당기간 동안 많은 '변화와 갈등'이 예상된다. ◆ 최측근 '집사'의 거액수수가 직접발단 최악의 경우 사퇴로까지 비화될 수 있는 노 대통령의 폭탄선언은 '노무현의 영원한 집사'로 통하는 최도술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이 SK로부터 10억원을 받았다는 의혹과 이에 대한 검찰 수사가 직접적인 발단인 것으로 분석된다. 더구나 청와대 386측근의 대표주자격인 이광재 국정상황실장의 금품수수설까지 불거지면서 안희정씨의 나라종금 자금 수수 시비 이후 잠잠해진 측근들의 '비리행진'이 위험 수준에 도달했다고 판단한 듯하다. 그렇지 않아도 양길승 전 제1비서실장이 불명예 속에 중도낙마한 터여서 노 대통령은 최대의 무기이자, 힘이라고 여겨온 '도덕성'이 뿌리째 흔들리는 지경이 됐다. ◆ 국내외 환경도 최악 측근들의 비리연루 의혹 외의 갖가지 상황도 노 대통령을 계속 궁지로 몰아세웠다. 송두율 교수의 방한이 평지풍파를 일으킨 가운데 청와대가 방한에 관여했다는 주장이 제기됐고, 이라크 추가 파병문제는 어떤 식으로 결론나든 비난받을 수밖에 없는 사안이다. 서울 강남 집값 문제 등과 관련해 부동산시장은 정부의 능력을 '조롱'하고 있으며,새만금간척 사업, 위도핵폐기장 건설, 경부고속철과 서울외곽도로 등 굵직굵직한 국책사업도 제대로 진도를 내는게 없다. 이 와중에 노동계와 전교조 등 전통적인 '친노(親盧)세력'에서까지 청와대로 화살을 날리고 있다. ◆ 국정운영에 메가톤급 파장 예고 "내년 총선에서 과반수를 확보 못하면 바로 레임덕(임기말 권력누수)"이라는 예고가 이전부터 공공연했던 상황에서 노 대통령의 초강력 승부수는 자칫 국정의 주요과제를 현상태에서 좌초시키고 국정의 공백까지 불러 일으킬 수 있다. 다만 "최도술의 SK자금이 어디까지 갔나" "노 대통령은 자금수수 사실을 언제부터,얼마만큼 알았나" "잇단 측근비리에 대한 특단의 대책을 밝혀라" 식의 정치적 공방은 사전에 차단하는 효과를 낼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면서 '내년 총선 전후까지' 시간을 확보한 채 여론의 추이를 살펴보고 유권자들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것이 확실시된다. 또 먼저 크게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거대 야권 등 기존의 정치권을 정면으로 압박하고, 내년 총선에 대비해 새로운 계기로 활용하는 길을 찾을 것으로 보인다. ◆ 당장 국정수행 포기는 안할 듯 재신임 선언이 반드시 퇴진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노 대통령은 "재임하는 동안에는 최선을 다하겠으며, 국정방향과 원칙을 조금도 흩뜨리지 않고 책임을 다하겠다"고 말했고, 고건 총리에 대한 기대와 역할부여 방침을 분명히 했다. 또 "국정에 혼란이 있거나 하던 일이 중도에 좌절될까 걱정은 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언론환경도 나쁘고, 국회환경도 나쁘고, 지역적 민심의 환경도 나쁘다"는 스스로의 진단처럼 노 대통령이 위기 앞에 자발적으로 걸어나간 것은 사실이다. 불신임으로 더 큰 혼란이 초래될지, 노 대통령이 신뢰를 회복하는 계기가 될지는 앞으로 여론의 추이에 달렸다. 한편으로는 '시스템에 의한 국정'이 이제야말로 필요한 국면이 됐다. 허원순 기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