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종금 로비의혹 사건에 연루돼 검찰에 의해 구속영장이 청구될 것으로 알려진 한광옥(韓光玉) 민주당 최고위원은 김대중(金大中)정부에서 대통령 비서실장을 거쳐 민주당 대표를 지낸 여권 구주류의 핵심인물이다. 이에따라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 방침은 그의 최대 정치적 위기이자, 여권 구주류 전체의 쇠퇴와 몰락을 상징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특히 신.구주류간 신당 갈등과 관련, 실제와 상관없이 정치권밖의 힘에 의한 구주류 인적청산의 신호탄으로도 비쳐짐에 따라 구주류의 생존을 위한 몸짓이 더욱 격렬해질지, 아니면 몸을 사리게 될지 주목된다. 한 최고위원은 지난해 대선과정에서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민주당 대선후보로 선출된 후 지지도 하락과 함께 당안팎의 후보단일화추진 세력의 압박에 내몰릴때, 행보에 진폭을 보이긴 했지만 후보단일화를 적극 압박했던 다른 구주류 핵심인사들과 달리 중간자적 입장을 취하면서 친노(親盧)에 가까운 성향을 보였으나 구주류 핵심 가운데 `사정'의 첫 희생자가 된 셈이다. 그는 김 전 대통령 집권 직후인 지난 98년 초대 노사정위원장을 맡아 노.사.정대타협을 이끌어낸 것을 비롯, 지난 97년 대선을 앞두고 이른바 `DJP 후보단일화'를성사시키는 등 굵직굵직한 정치협상 이력을 통해 `조정과 타협의 명수' `뚝심의 사나이' 등의 별명을 얻었다. 5공정권 초기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내란음모죄로 구속돼 있던 `김대중 석방'과`대통령 직선제 도입'을 처음 주장하면서 김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으며, 85년 김전 대통령의 추천으로 민추협 대변인을 지내며 `범동교동계'로 분류돼 왔다. 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선한 뒤 구로을 재선거를 통해 원내진입에 성공했으나 99년 12월 `옷로비' 사건으로 김 전 대통령이 정치적 궁지에 몰리자 의원직을 던지고 청와대 비서실장을 맡아 2001년 9월 민주당 대표로 자리를 옮길 때까지 1년 10개월동안 DJ를 밀착 보좌했다. 이후 2002년 4.27 전당대회 직전까지 민주당 대표로서 노무현 (盧武鉉) 대통령을 민주당 대선후보로 선출한 국민참여경선제 도입과 시행을 무리없이 이끌었다. 평소 입이 무거워 `이중지퍼'라는 말을 들을 정도이나, 대인관계에선 부드럽고격의가 없어 따르는 사람들이 많은 `화합형 정치인'으로 꼽힌다. (서울=연합뉴스) 정재용기자 jj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