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부산아시안게임에 참가하기로 한 것은 남북한 체육교류에 가장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하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분단 이후 크고 작은 체육교류가 있었지만 한국에서 여는 종합경기대회에 북한이 참가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낯을 가리는' 북한은 진작부터 국제대회 참가가 활발하지 않았지만 한국에서열리는 국제대회는 철저하게 외면해왔다. 86년 서울아시안게임 때도 북한은 참가하지 않았고 올림픽 사상 최대의 참가국수를 기록한 88년 서울올림픽에도 북한은 불참했다. 외국에서 열린 90년 베이징아시안게임, 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94년 히로시마아시안게임, 96년 애틀랜타올림픽, 98년 방콕아시안게임, 2000년 시드니올림픽 등에는 빠짐없이 얼굴을 내밀었지만 국내 대회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등의 권유에도 끝내 참가하지 않았던 것. 지금껏 남북한 체육교류의 대표적 성과물로 꼽히는 91년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단일팀 구성이나 세계청소년축구 단일팀 출전, 그리고 2000년 시드니올림픽 동시입장등은 모두 '외국'에서 이뤄진 일이다. 또 99년 북한 남녀 농구대표팀이 서울을 방문, 친선경기를 갖는 등 북한 선수들의 한국 방문도 드물지 않았으나 여전히 단일 종목에서 이벤트성 경기에 국한됐다. 스포츠가 정치적, 이념적 선전수단임을 숨기지 않는 북한이 한국에서 여는 국제대회 참가를 체제의 우월성 경쟁에서 패배했음을 인정하는 일로 받아들였던 탓이다. 이번 부산아시안게임 참가는 300여명이 넘는 대규모 선수단이 국내로 들어온다는 점에서 지금까지 어떤 남북한 체육교류보다 '파괴력'이 클 것으로 국내외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우선 부산 뿐 아니라 전국이 '북한 열풍'이 불 것으로 보인다. 지난 99년 북한 농구스타 리명훈이 통일농구대회 출전차 서울에 왔을 때 한국인들이 보였던 엄청난 관심을 감안하면 아시안게임에 참가하는 북한 선수들의 일거수일투족은 모두 국민적 관심사가 될 공산이 크다. 이에 따라 아시안게임에 대한 국민적 열의가 월드컵 못지 않게 뜨겁게 달궈질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김정일 국방위원장 방한만큼 위력적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대륙별 종합경기대회에 불과한 아시안게임이 세계 언론의 눈길을 모을 초특급 이벤트로 변모한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 이후 세계 언론의 집중적 관심을 받고 있는 북한이 대규모 선수단을 한국에 보내는 것은 큰 사건이 아닐 수 없다. 때문에 북한이 참가하는 부산아시안게임은 세계 유력 언론사들이 대규모 취재단을 보내 치열한 취재 경쟁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변방에서 열리는 체육대회'로 취급받던 아시안게임이 세계 주요 언론의 이목을한달 가량 잡아둘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이 참가하는 이상 한국에서 아시안게임이 열린다는 사실을 북한 주민들에게알리지 않을 수 없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월드컵 경기 결과를 보도하면서도 한국에서 월드컵이 열리다는 사실을 애써 드러내지 않으려했던 북한 언론의 태도로 볼 때 이번 아시안게임 참가는 엄청난 변화가 아닐 수 없다. 그동안 국제대회에서 한국 선수단과 자연스럽게 접촉해왔다지만 한국에서 한달가량 생활하게되는 북한 선수들의 '한국 경험'도 여간 대단한 일이 아니다. 북한의 개방화에 일대 전기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 아시안게임 참가 결정이 어떤정치적 배경이 있는지 알려지지 않았으나 제한적 공간에서 소수 인원으로 이뤄지던남북한 체육교류는 이번 부산아시안게임을 계기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 것이 틀림없다. 대한체육회 관계자는 "북한이 국제스포츠무대에 전보다 적극적으로 나서려는 움직임이 전부터 있었다"면서 "시드니올림픽 동시입장에 이어 남북이 하나가 되는 기회로 삼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권 훈기자 kho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