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금 굴릴 곳을 찾던 서울 강남구의 김성환씨(63)는 최근 아파트청약 시장에서 단타매매로 수익을 올리기로 마음을 고쳐 먹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곧 아파트값이 내릴 것이라던 인근 부동산중개업자들이 슬며시 말을 바꾸고 있기 때문이다. "6월부터 아파트를 분양받은 후 중도금을 2회 이상 납부하고 분양 후 1년이 지나야만 분양권 전매를 허용해 집값을 안정시키겠다던 정부발표가 물거품으로 돌아갈 것 같다"는 것이다. 김씨는 오는 5일부터 시작되는 서울지역 5차 동시분양에 집에 있는 청약통장을 모두 들이내밀 작정이다. 국회가 6·13지방선거와 연말 대선을 앞두고 정쟁을 벌이느라 공전을 거듭하던 끝에 후반기 원구성조자 못하고 표류함에 따라 정부의 주택가격안정책을 비롯한 각종 경제와 민생관련 법안이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 건설교통부 관계자는 "주택건설촉진법 개정안은 의원입법 형태로 처리하기로 하고 지난 4월 제출됐으나 여태 국회에서 낮잠을 자고 있다"고 말했다. 정치권의 집단적 '직무유기' 사례는 이뿐만이 아니다. 고리대 사채업자의 횡포로부터 서민을 보호하는 내용의 대부업 등록 및 금융이용자보호법(이자제한법) 제정안은 국회 재경위와 법사위간 법리논쟁으로 처리가 극히 불투명한 상태에 놓였다. 예금보험공사의 채권발행동의안은 공적자금 국정조사 여부를 놓고 각 정당간 견해차가 커 자칫 9월 정기국회로 넘어갈 공산이 크다. 재경위소속 강운태 의원은 "선거를 앞두고 있어 6월분보다 9월분(3천6백60억원)과 12월 만기도래분(3조2천9백40억원)의 차환발행이 더 어려울 것"이라는 비관적 견해를 내놓고 있다. 이밖에 토지공사와 주택공사를 통합하기 위한 '한국토지주택공사법',철도산업 현대화와 구조조정을 위한 '철도산업발전 및 구조개혁에관한 법률',가스산업 구조개편을 위한 '한국가스공사법' 등 현 정부의 대표적 개혁법안들도 표심의 향배를 좇는 정치권의 눈치보기로 처리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반해 철저히 경제논리로 풀어야 하는 하이닉스반도체 처리문제는 정치권의 개입으로 꼬일 조짐을 보이고 있다. '독자생존'과 '해외매각' 방안에 대한 정밀검토가 아직 진행중임에도 불구하고 선거를 의식한 각 정당들이 앞다퉈 "자생의 길로 가는 게 옳다"며 채권단과 정부를 압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초 "어떤 방식으로든 조기에 결론이 내려져야 할 것"이라던 전윤철 경제부총리마저도 "매각을 하더라도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태도를 보이고 있어 정치논리에 휘둘리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고 있다. 김병일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