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규 국민의힘 의원(왼쪽), 박정훈 국민의힘 서울 송파갑 당선인. / 사진=연합뉴스
이철규 국민의힘 의원(왼쪽), 박정훈 국민의힘 서울 송파갑 당선인. / 사진=연합뉴스
친윤(친윤석열)계 핵심 이철규 국민의힘 의원이 '자신의 원내대표 경선 출마를 권유해놓고 다른 창구에서는 불출마를 촉구했다'며 비판한 당선인은 배현진 의원이 아닌 박정훈 서울 송파갑 당선인이었던 것으로 밝혀지는 분위기다.

박 당선인은 10일 페이스북에서 이 의원을 '그 정치인'으로 표현하며 논란의 전말을 밝혔다. 박 당선인은 "'자신에게 출마를 권유했던 사람이 인제 와서 반대했다'고 이야기한 그 정치인의 발언은 저를 겨냥한 것"이라며 "그 권유는 판세가 우리 당에 불리하지 않았던 지난 3월, 그 정치인이 얼마나 그 자리를 원하고 있는지 잘 알았기 때문에 덕담식으로 한 말이었다"고 했다.

총선이 치러지기 전인 지난 3월, 이 의원에게 덕담처럼 원내대표 출마를 권유했지만, 총선 이후에는 이 의원에게 총선 참패 책임이 있기 때문에 출마를 공개 반대했다는 게 박 당선인의 입장이다. 그런데 박 당선인은 총선 전의 권유가 마치 총선 이후 있었던 것처럼 왜곡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3월 초의 통화가 총선 이후의 대화로 변질됐다"고 했다.
박정훈 국민의힘 서울 송파갑 당선인이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22대 국회 국민의힘·국민의미래 당선자총회에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 사진=뉴스1
박정훈 국민의힘 서울 송파갑 당선인이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22대 국회 국민의힘·국민의미래 당선자총회에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 사진=뉴스1
박 당선인은 최근 이 의원과 마주친 자리에서 이 의원이 자신을 모르는 척했었다고 주장하며 자신의 불출마 요구 때문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박 당선인은 "지난 4일 가깝게 알고 지내는 기자의 결혼식에 갔더니 그 정치인이 계시더라"며 "그런데 그분이 눈을 피하시길래 제가 '인사는 하셔야죠'라고 손을 내밀었다. 그랬더니 대뜸 '너 나 알아?'라고 황당한 반응을 보이셨다"고 했다.

이어 "그 정치인은 제가 공개적으로 (원내대표 출마를) 만류하는 바람에 본인의 간절했던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듯 보였다"며 "정치인들이 공개적으로 감정싸움을 하는 건 국민들을 짜증 나게 만드는 일이어서 바람직하지 않다는 게 제 소신이지만, 정확한 상황을 알리는 게 불가피하다는 판단에 부득이 펜을 들었다"고 덧붙였다.

앞서 이 의원은 지난 8일 SBS 라디오에서 자신에게 전화로 출마를 권유해놓고 정작 다른 창구에서는 자신의 출마를 공개 반대했다는 당선인이 있었다는, 소위 '뒤통수를 맞았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혹시 배현진 의원이냐'고 진행자가 콕 집어 물었지만, "구체적으로 이름은 얘기 안 하겠다"고 해 배 의원이 지목됐었다. 이런 모습은 친윤계 간 자중지란으로 비쳤다.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 / 사진=연합뉴스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 / 사진=연합뉴스
그러자 배 의원은 이 의원의 출마를 만류했던 통화 녹취를 공개하면서 이 의원에게 날을 세웠다. 그는 지난 8일 페이스북에서 "저런 식의 애매모호한 대답이 어떤 오해를 낳고 기사를 생산시킬지 누구보다 잘 아는 분"이라며 출마를 권유한 적이 없다고 했다. "코너에 몰리면 1만 가지 말을 늘어놓으며 거짓을 사실로 만들고 주변 동료들을 초토화시키는 나쁜 버릇. 이제라도 꼭 고치셨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배 의원이 공개 비판한 다음 날인 지난 9일 이 의원은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난 언론 인터뷰에서 배 의원을 저격한 것이냐'는 질문에 "아니다"라고 했다. 이어 "그분이 초선 의원, 정치 신인인가"라고 반문했다. 이 의원은 문제가 된 라디오 인터뷰에서 "정치 시작하지도 않은 분들이 그런 말씀 하는 모습을 보면서 조금 우려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했다"고 발언했는데, 여기서 말한 '정치 시작하지도 않은 분'은 초선 당선인을 의미하는 것이지, 재선인 배 의원을 겨냥한 게 아니라는 취지다.

이 의원은 또 배 의원이 통화 녹취를 공개하며 비판한 데 대해서도 "소이부답(笑而不答·웃을 뿐 대답하지 않는다)"이라며 "할 말이 없다", "말을 섞을 이유가 없다"고 했다. 이에 배 의원은 "다 들통나니 인제 와서 '배현진은 아니었다'며 또 누구 힘없는 초선 당선인들에게 화살을 돌리냐"며 "라디오 진행자가 '배 의원이냐' 물었을 때 그 즉시 '아니오'라고 하셨어야 한다. 단 세 글자"라고 했다. 이어 "애매모호하게 연기 피우니 기자들이 추측해서 제 이름으로 당연히 기사 썼는데, 그거 노린 것 아니냐"고 덧붙였다.

홍민성 한경닷컴 기자 m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