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만 더 살아계세요.

꼭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17일 평양에서 두번째 이뤄진 개별상봉장에 들어서는 남과 북의 가족들은 그동안 재회의 기쁨과 궁금한 사항을 나눈 때문인지 비교적 조용하고 담담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만남이 오찬장으로 이어지고 시시각각 헤어질 순간이 다가오자 또다시 닥쳐올 이별에 오열하며 너무나도 길었던 분단의 세월을 원망했다.

○…이날 이산가족들은 ''건강해라,건강해라''는 평범한 한마디에 이별의 아쉬움과 혈육의 정을 담아 보냈다.

북측 가족들은 또 개별상봉에서 미리 단체로 준비한 선물들을 남측 방문단에 전달했다.

선물상자에는 들쭉술 3병,보약 5통,낙원담배 1보루,조선고려인삼술,도자기 등이 담겨져 있었다.

북측 가족들은 선물을 건네면서 "김정일 장군님의 배려로 이렇게 귀한 선물을 남쪽 가족들에게 전하게 돼 무한히 기쁘다"고 말했다.

○… "영덕아!우리 절대 울지말자,울지말자"

이산가족 상봉의 현장을 기록하기 위해 남측 방문단과 함께 평양에 온 소설가 이호철(68)씨가 여동생 영덕(58)씨와 이날 비공개 상봉했다.

이씨는 동생을 꼭 껴안은 채 "울지 말자"고 거듭 얘기하면서 애써 눈물을 참았다고 했다.

지난 98년 동생을 만날 기회가 있었지만 상봉 직전 북측 안내원을 통해 사진만 전해받고 돌아서야 했던 이씨였다.

그는 "여덟살 때 헤어진 동생이 환갑을 눈앞에 둔 노년에 접어들었지만 곱게 잘 늙은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고 말했다.

한편 이씨의 남동생 호열(64)씨는 중풍으로 쓰러져 이날 만나지 못했다.

○…"아버님 어머님,저 세상에서나마 이 못난 불효자식을 용서하세요"

남의 김원찬(77)씨는 여동생 선숙(64)씨의 손을 꼭 잡고 오찬장에서 2분여 동안 소리내서 부모님을 추모하는 기도를 올렸다.

김씨는 "통일이 돼 고향까지 갈 수 있으면 바로 산소에 찾아가 인사를 드리겠습니다"고 약속했다.

선숙씨는 "오빠를 만나면 마구 때려주려고 했는데,흰머리에 너무 늙어 버렸어요"라며 울먹였다.

○…남측 이산가족 방문단원들은 마지막 상봉날이라는 아쉬움 때문인지 피곤한 데도 불구하고 아침 일찍부터 호텔 로비에 나와 삼삼오오 상봉에 관한 얘기 꽃을 피웠다.

아침 식사를 마친 이산가족들은 전날 개별상봉시 미처 전하지 못한 선물을 꼼꼼하게 챙겼다.

또 부모님 제삿날과 가족·친척들의 생일 가족관계 등 북측 가족들에게서 확인한 내용을 메모지에 정리하는 등 마지막 상봉을 준비했다.

<평양=공동취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