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당시대"

총선을 석 달 앞둔 정가 풍경은 이 한 마디로 요약할 수있을 듯하다.

남을 개혁할 능력도 자기를 개혁할 의지도 없는 기성 정치권이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한 가운데 신당 창당의 물결을 타고 수많은 정치신인들이 총선의
격전장으로 몰려들고 있다.

이제 막 "새천년 민주당"이라는 이름을 확정지은 여권신당에는 권위주의
정권의 장관을 지낸 인물에서부터 텔레비전 방송 출연으로 한껏 인지도를
높인 아나운서와 저널리스트, 화염병과 더불어 20대를 보낸 386세대의
"의장님"과 "정치적 노동운동"을 이끌어온 노조 지도자들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각계각층의 명망가들이 몰려들고 있다.

최근 국민회의와의 지지율 격차를 바짝 좁힌 한나라당의 조직책 공모 창구
앞에도 유명.무명 정치신인들의 발길이 몹시 분주한 양상이다.

기존 정당을 모태로 하지 않는 "진짜 신생정당"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정치신인 유입은 더욱 폭이 넓을 것으로 보인다.

민주노총과 진보적 지식인 그룹을 토대로 발족하는 민주노동당 지도부와
예상 후보들은 거의 전원 신인이라 할 수 있다.

무소속 홍사덕 의원과 장기표씨가 추진하는 가칭 "개혁신당" 역시 다른
정당 낙천자는 공천하지 않겠다는 말을 그대로 지킬 경우 정치신인들의
경연장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자민련의 내각제 강경파 김용환 의원과 "5공세력"인 허화평씨가 만든다는
"한국신당"은 지도급 인사의 면면으로 보아 "중고신인"이 많긴 하겠지만
수많은 정치지망생에게 "공천의 꿈"을 이룰 기회를 제공하는 데는 기여할
것이다.

여기에다 실체가 없는 가운데 말만 무성한 "티케이신당"이 정말로 출현할
경우 정치신인 등용문은 더욱 넓어질 것이다.

신인들과 "신생정당"들은 희망에 부풀어 있다.

지지하는 정당이 없다는 이른바 "무당파 유권자"가 전체의 40%를 넘나들고
압도적 다수의 유권자가 현역의원의 교체를 원한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줄을
잇기 때문이다.

조사기관과 조사시기에 따라 기복이 있기는 하지만 아직 실체를 드러내지도
않은 "홍사덕-장기표 개혁신당"의 지지율이 국민회의에 버금가게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민주노동당도 한자리수이기는 하지만 공동여당인 자민련에 비해 손색이
없는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

각각 충청도와 대구.경북을 거점으로 삼아 서로 손을 잡을 것으로 보이는
"한국신당"과 "티케이신당" 역시 본거지에서는 무시할 수 없는 지지율을
자랑한다.

그러면 이번 총선은 신생정당과 정치신인에게 승리의 기쁨을 안겨줄
것인가.

아직은 그렇게 단정할 근거가 없다.

이들의 앞길에는 험난한 장애물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첫번째 장애물은 소선거구제라는 진입장벽이다.

권역별 비례대표제와 1인2투표제 도입을 둘러싼 대립이 아직 해소되지는
않았지만 여야는 일단 현행 소선거구제를 유지하기로 합의했다.

이 제도는 지지율이 같을 경우 전국적으로 고른 지지를 받는 정당보다는
특정 지역에서 몰표를 받는 정당에 유리하다.

따라서 기존 정당들은 지역주의를 은근히 또는 노골적으로 선동하는
선거전략을 버리지 않을 것이다.

유권자들이 여기에 휘둘린다면 이길 방법이 없다.

똑같은 전략으로 대응해서 이긴다고 해도 문제다.

그런 신당과 신인에게서 새로운 정치를 기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두번째 장애물은 "반사적 지지"의 함정이다.

출범조차 하지 않은 신생정당과 아직 그 면모를 알 수 없는 "신인"에 대한
높은 지지는 기존 정당과 정치인에 대한 환멸의 다른 이름에 불과하다.

이것만 믿고 조직을 급조해서 함량 미달의 신인을 마구잡이로 내보내는
신생 정당은 선거가 시작되기도 전에 스스로 환멸의 대상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 시사평론가/성공회대 겸임교수 denkmal@hitel.net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1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