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철씨는 17일 사과문을 내고 국회증인출석 검찰재조사 등에 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보사태에 이어 "국정개입" 파문 등 자신을 둘러싼 의혹이 갈수록 증폭되고
있음에도 함구로 일관해온 김씨가 사실상 "항복"을 선언한 것이다.

김씨의 선택은 여론의 압박을 더 이상 피할수 없다는 상황인식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박경식씨가 녹화한 테이프의 공개 등 자신을 둘러싼 각종 의혹설이 하나하나
사실로 밝혀지고 있는 상황에서 더 이상 머뭇거릴 경우 결국 아버지인 김영삼
대통령은 물론 여권에도 엄청난 정치적 부담을 지울 수밖에 없다는 냉혹한
현실을 받아들인 결과라는 것이다.

하지만 김대통령 사과, 이회창 대표 체제 출범에 이은 김씨의 이날 사과로
김씨와 여권 전체가 한보터널에서 빠져나올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과거 비자금사건 등 대형사건 전개과정에서 당사자의 "사과"는 늘 사건을
매듭짓기보다 파장을 확대하는 단초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야권이 김씨의 사과를 수용하기보다는 오히려 문제시하고 있는 점은 그런
가능성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김씨에 대해 사과형식과 내용을 강하게 비난했다.

야권이 문제삼는 부분은 <>권력의 중심에 서 있는듯 "대국민담화" 형식으로
문건을 발표하고 <>"잘못이 있다면"이라는 어법을 사용해 뭔가 억울하다는
심정을 드러내며 <>국정 개입을 "아버님"을 도와주기 위해 한일로 정당화한
점 등이다.

여기에 김씨가 <>대국민 사과라기보다는 "아버님"에 대한 사과에 중점을 둔
듯한 언급을 하고 있고 <>처음부터 끝까지 대통령의 아들 자격을 강조한 점도
시비거리가 되고 있다.

이런 야권의 비판적 시각은 물론 김씨문제를 미결로 남겨둠으로써 정국주도
및 대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확보하려는 전략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야권의 또다른 노림수는 김씨문제로 발목이 잡힌 여권을 계속 압박함으로써
해법을 둘러싼 여권내 분란이 더욱 심각한 양상으로 비화할수 있다는 점.

이는 실제로 이날 김씨의 사과를 둘러싸고 청와대측과 이대표측이 드러낸
미묘한 시각차에서 어느 정도 입증됐다.

청와대측은 김씨의 사과가 이대표의 건의를 수용한 결과로 비춰지자
"전적으로 대통령의 뜻을 받들어 김씨가 결단을 내린 것"이라고 즉각 해명
했다.

사실여부를 떠나 청와대측은 김씨의 사과가 이대표의 "대쪽"이미지를 강화
하는데 이용되는 것자체가 불쾌하고 김씨문제에 관한한 청와대가 주도권을
쥐고 있으며 앞으로도 쥐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이대표측은 이대표의 취임일성이 "법대로 처리"이었음을 강조하며
이같은 청와대측의 "독자적 결단" 부각에 내심 언짢은 표정이다.

정치권에서는 당장 이런 여야간 전략차이와 여권내 복잡한 사정 등으로
한보청문회를 진행하는 과정이 결코 순탄치 않을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여야가 비록 김씨의 증인채택에 합의했지만 증언범위와 시간 형식, 사후처리
방법 등을 둘러싼 대립은 여전하기 때문이다.

특히 이런 대립으로 김씨문제가 좀처럼 가닥이 잡히지 않을 경우에는 대선
전초전 와중에 있는 여권내에서도 자기목소리를 내야 사는 이대표진영과
이에 반발하는 반 이대표진영간의 분란은 한층 심해질 듯하다.

< 허귀식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