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파월 피벗
피벗(pivot)은 동사로는 ‘축을 중심으로 회전하다’란 뜻이 있다. 운동경기에선 한 발을 축으로 삼아 방향을 바꾸는 것을 말한다. 농구에서 워킹 반칙을 당하지 않으려면 피벗을 해야 한다. 야구에선 2루에서 주자를 잡은 야수가 1루로 송구해 더블플레이를 완성하는 기술이다. 국제전략 분야에서도 쓰인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때 미국 외교·군사정책의 중심축을 아시아·태평양 지역으로 옮긴 것을 ‘피벗 투 아시아(Pivot to Asia)’라고 불렀다.

요즘은 이 용어가 금융가에서도 회자된다. 2018년 2월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에 취임한 제롬 파월은 이후 1년간 기준금리를 1%포인트 올리며 긴축정책을 펴다 금리 인하로 급선회했다. 당시 연 2.25~2.50%였던 기준금리를 코로나 발발 등을 이유로 세 분기 만에 0~0.25%의 제로금리 수준으로 떨어뜨렸다. 그래서 ‘파월 피벗’(파월의 입장 선회)이란 말이 생겼다.

금융완화 기조를 긴축으로 바꿔도 피벗이라고 볼 수 있지만, 실제론 그렇게 부르지 않았다. 폴 볼커 Fed 의장이 오일쇼크로 솟구친 물가를 잡겠다며 기준금리를 한꺼번에 4%포인트 끌어올린 때는 1979년 10월 6일 토요일 저녁이었다. 얼마나 충격적이었으면 ‘토요일 밤의 학살’이란 별칭이 붙었다. 1994년 앨런 그린스펀 Fed 의장이 1년간 기준금리를 3%포인트 끌어올렸을 땐, 채권 가격이 속락해 ‘채권시장 대학살’로 기억됐다.

Fed는 2일(현지시간) 끝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예상대로 0.75%포인트 올려 금리 상단이 연 4.0%에 이르렀다. 일단 파월 의장은 "내년 최종금리는 예상보다 더 높아질 것"이라고 밝혀 시장을 뒤흔들었다. 그럼에도 경기 침체를 우려해 파월 피벗의 재연을 기대하는 측이 아직 있는가 하면, 미국 고용시장이 워낙 뜨거워 “파월 피벗은 물 건너갔다”는 견해도 적지 않다.

파월 피벗은 금융정책을 냉탕·온탕으로 급변동시키는 것을 비판한 ‘샤워실의 바보들’의 다른 버전일 수 있다. 파월에겐 명예로운 표현은 아닐 것이다. 그런 점에서 가능성을 점치기 어렵지만, 분명 오는 24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의 금리 결정에도 영향을 미칠 중요 요소다.

장규호 논설위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