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여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환자로 보이는 미국 퇴역군인의 영상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PTSD는 죽음을 초래할 정도로 충격적인 사고를 경험한 뒤, 반복해서 사고를 떠올리는 등 정신적 고통을 겪는 것을 뜻한다.

이라크전 참전용사로 알려진 이 사람은 상가 주차장을 전투 현장, 자기 손을 권총으로 여기고 차량을 엄폐물 삼아 전투를 벌이는 망상에 빠져 있었다. 긴급구조팀이 “작전 끝났다, 수색도 마쳤다”고 얘기하고 나서야 그는 겨우 경계를 풀고 정신을 차렸다.

미국의 이라크전쟁 영웅인 네이비실 저격수 출신이 PTSD를 겪는 한 퇴역군인의 총탄에 희생된 사건도 영화 ‘아메리칸 스나이퍼’에 담겨 PTSD가 얼마나 위험한지 보여줬다. PTSD가 2차 사고로도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국내에선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의 생존자인 이선민 씨가 작년 <저는 삼풍 생존자입니다>란 책을 펴내 PTSD의 고통을 알렸다. 이 작가는 당시 건물 잔해와 파편으로 온 몸이 피투성이가 됐다. 이후 불을 켜면 사고 기억이 자꾸 떠올라 사고 뒤 10년간 집에서 불을 꺼놓고 지냈다고 한다. 그는 무기력, 대인관계 기피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자해에 극단적 선택까지 했다고 털어놨다.

PTSD의 원인은 전쟁 외에도 생활 주변 안전사고부터 자연재해와 천재지변까지 다양하다. 일생에 한 번 이상 이런 정신적 외상 사건에 노출되는 사람이 인구의 절반은 된다고 한다. 과거 성수대교 붕괴, 대구 지하철 참사, 세월호 침몰 등 유독 재난 상황이 많았던 한국엔 아직도 고통받는 PTSD 환자가 적지 않을 것이다.

지난 주말 서울 이태원 참사 현장에서 극적으로 살아남은 이들은 물론 의료진·경찰관·자원봉사자와 이를 지켜본 시민들도 PTSD에 노출될 위험이 크다. 사고 현장 모습이 자꾸 떠올라 우울감에 시달리는 시민이 적지 않다. 급기야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지난 30일 “현장 영상이나 뉴스를 과도하게 반복해 보는 행동은 건강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자제를 당부했다. 사망자뿐만 아니라 PTSD를 호소하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필요한 시점이다.

장규호 논설위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