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비닐봉지의 퇴장
비닐봉지는 흔히 환경오염 주범으로 지목된다. 버려진 비닐봉지를 태울 때 다이옥신이라는 맹독성 환경 호르몬이 나오고, 매립하더라도 20년에서 100년이 지나야 썩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비닐봉지가 목에 걸린 채 헤엄치는 돌고래, 죽은 고래 배 속에 가득한 비닐 등의 영상이 ‘소리 없는 살인자’에 대한 우려를 키웠다. 하지만 비닐봉지는 해안에서 발견되는 플라스틱 쓰레기 중 0.8%를 차지할 뿐이다.

비닐봉지가 당초 환경보호를 위해 만들어졌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스웨덴 공학자인 스텐 구스타프 툴린은 사람들이 많이 쓰는 종이봉투를 제작하기 위해 수많은 나무가 베어지는 것을 보고 ‘가볍고 오래가는 봉투를 만들어 몇 번이고 재사용할 수 있게 하자’는 의도에서 1959년 비닐봉지를 고안했다. 실제 2011년 발표된 영국 환경청 연구 결과 대기오염 관점에서 비닐봉지가 종이봉투나 면으로 만든 에코백보다 낫다는 분석이 나왔다. 제품 생산 시 발생하는 탄소량을 고려할 때 종이봉투는 3번 이상 재사용하고, 면 재질 에코백은 131번 정도 재사용해야 비닐봉지를 1회 사용하는 것과 같은 환경보호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정부가 2019년 대형마트와 슈퍼마켓에 이어 오는 24일부터는 편의점에서도 비닐봉지 사용을 금지하기로 했다. 다만 1년간의 계도기간을 둬 위반하더라도 과태료는 부과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과연 소비자의 불편을 감수할 만큼 환경보호 효과를 가져올 것인지 의구심이 든다. 국내 전체 비닐봉지 사용량은 연간 약 211억 장으로 이 가운데 편의점 비중은 3% 안팎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닐봉지 대신 사용할 종이봉투가 훨씬 비싼 데다 무거운 상품을 담았을 때 찢어지기 쉬워 편의점 곳곳에서 벌어질 점주와 손님 간 실랑이도 우려된다.

환경부의 탁상행정에 대한 불만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해 환경부 장려책에 따라 편의점업계가 일제히 생분해 친환경 봉지를 제작·도입했는데, 분리수거 시스템이 준비 안 된 탓에 1년 만에 없던 일로 되돌린 적도 있다. 정책 현장의 불편까지 세심하게 살피면서 효과가 큰 정책부터 해나가야 소비자의 지지를 얻어 실효성을 거둘 수 있지 않을까.

유병연 논설위원 yoob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