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세계 경제 질서에 미칠 파장의 가늠자는 서방의 대(對)러 경제제재다. 양날의 검인 대러 경제제재로 러시아는 물론 세계 경제의 타격이 불가피하다. 한편 주요 20개국(G20)은 제재라는 울타리 양편으로 나뉘었다. 제재 참여 이유는 단일한 안보 위기 대처인 반면 불참 이유는 제각각 다양해 이를 냉전질서의 부활로 단정하기는 이르다. 이번 사태가 세계 경제 질서에 미칠 영향은 경제 논리를 압도하는 안보 논리의 대두, 경제 안보 중 에너지 안보의 부각, 보호주의의 진영화와 신뢰 가치사슬의 강화, 기능주의의 종언 가능성이다. 이 네 가지를 예의 주시해야 한다.
그래픽=김선우 기자
그래픽=김선우 기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무력 침공으로 자유주의 국제 질서는 일대 도전에 직면했다. 초토화된 삶의 터전을 피해 목숨을 건 탈출 행렬은 280만 명을 넘어섰다. 하지만 비(非)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국가 침공에 맞선 국제사회의 응징은 불가불 군사적 개입이 아니라 경제적 개입이다. 러시아가 도네츠크와 루한스크 독립을 일방적으로 선포한 지난 2월 22일까지 총 2754건이던 대러 제재 건수는 3주 만에 3646건 폭증해 3월 14일 총 6400건에 달한다. 이란을 제치고 세계 최대 피제재국이 된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은 이를 선전포고라며 격앙했고 경제 보복을 다짐했다. 11위 경제 대국이자 에너지 강국 러시아에 대한 제재와 보복의 악순환이 초래할 세계 경제 대전의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

주요국과 국제기구는 대량살상무기 확산, 테러지원, 무력충돌, 인권침해 등 국제사회의 평화를 위협하는 행위를 억제하고자 무역제재, 금융제재, 여행금지, 항공 및 해운 제재, 무기금수 등 다양한 경제제재를 사용한다. 핵무기 보유국 간의 ‘공포의 균형’을 깨지 않으려면 글로벌화의 산물인 상호의존성의 무기화 외엔 답이 없다. 경제제재 효과는 목표가 성취 가능한 것이고 장기간 지속되며 다자간 제재일 때 극대화된다. 파렐과 뉴먼이 지적하듯 제재가 장기간 오남용돼 제재국의 경제 네트워크에서 피제재국이 이탈해 버리면 향후 제재 수단이 사라지기도 한다. 리처드 하스 미 외교협회(CFR) 회장은 미국 경험을 반면교사 삼아, 다양한 이해관계의 제재 동참국에 제재 손실을 보상해주고 광범위한 제재 연대가 가능해야 성공 가능성이 높다고 조언한다. 그러나 경제제재는 언제나 양날의 검이다.

모든 유형이 총망라된 대러 제재의 엄청난 화력에 러시아는 이미 막대한 타격을 입었다. 금융제재의 화룡점정은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 당시 실패를 교훈 삼은 러시아 7개 은행과 자회사의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퇴출이다. SWIFT는 200여 개국이 1만1000개 금융기관을 연결한 글로벌 금융결제통신망으로 하루 4000만 건의 메시지를 통해 거래되는 1조달러 중 러시아 관련은 약 1%로 추정된다. 알렉세이 쿠드린 전 러시아 재무장관은 이로 인해 러시아 국내총생산(GDP)이 최대 5%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2014년 이후 러시아는 자체 국제결제시스템(SPFS)을 구축하고 탈(脫)달러화를 추진 중이나 여전히 대외거래의 55.7%는 달러 결제라서 출혈이 클 전망이다. 만일 러시아가 이를 중국판 SWIFT인 CIPS로 우회한다면 SWIFT 배제 효과와 달러 패권의 약화로 이어지는 반면 위안화 국제화에 기여할 수 있다. 서방은 중앙은행뿐 아니라 국부펀드, 정부기관과 국영기업, 민간 은행까지 자금을 동결하고 예금과 증권거래를 중단시켰다. 금융제재의 백도어가 될 6430억달러 외환보유액 동결도 빠트리지 않았다. 유럽연합(EU)은 러시아 국영기업의 EU 증권거래소 상장을 금지했고,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은 러시아를 신흥국(EM)지수에서 편출했다. 제재의 과녁에는 이례적으로 최고지도자 푸틴도 포함시켰다.

모든 유형이 총망라된 대러 제재

세계경제 질서에도 '폭탄' 던진 러의 우크라 침공 [김양희 국제경제의 맥]
무역제재 중 단연 주목되는 것이 에너지 관련 제재다. 천연가스와 원유 생산에서 각각 1위(25%)와 2위(12%)를 점하고 있는 에너지 강국에 유럽은 천연가스의 40%를 의존했다. 그러나 독일은 1230㎞에 달하는 독-러 천연가스관 ‘노르트스트림2’ 개통 직전에 승인을 보류했다. 2022년까지 EU는 가스 수입의 3분의 2 감축, 영국은 원유 수입의 단계적 중단을 결행했다. 미국도 천연가스와 원유 수입을 금지했다. 미국은 수출통제개혁법(ECRA)에 기반한 첨단기술 통제 시 해외에서 대러 수출품에 사용되는 미국산 기술과 소프트웨어, 장비가 10% 이상이면 이들도 규제하는 해외직접생산규정(FDPR)을 적용했다.

제재 효과를 위한 국제 공조는 어떨까. 3월 2일 열린 유엔 긴급특별총회에서 한국을 포함해 압도적 다수인 141개국이 러시아 규탄 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졌다. 물론 이들이 모두 제재에 동참하진 않았다. 3월 4일 기준 G20의 제재 동참 현황을 보면 참여와 불참이 홍해처럼 절반으로 갈린다. 전자는 미국 캐나다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EU 한국 일본 호주이고, 후자(러시아 제외)는 중국 인도 인도네시아 멕시코 브라질 아르헨티나 터키 사우디아라비아 남아프리카공화국이다. 비G20 중 전자는 스위스 노르웨이 대만 싱가포르 뉴질랜드이고, 후자는 이스라엘 시리아 이란 북한 베네수엘라 쿠바 니카라과 옛소련국들이다. 그러나 이를 두고 세계 경제가 두 동강 났다고 단정하기에는, 참여 이유는 분명한 반면 불참 이유는 제각각이다.

경제제재의 지정학 명료하게 드러나

세계경제 질서에도 '폭탄' 던진 러의 우크라 침공 [김양희 국제경제의 맥]
세계지도를 펼쳐놓고 제재 참가국을 찍어 보면 경제제재의 지정학이 명료하게 드러난다. EU에게 있어 이번 사태는 안보는 미국에, 에너지는 러시아에 의존해온 현실에서 번쩍 눈을 뜨게 한 각성제다. 중립국 스위스마저 금융제재에 나선 배경이다. 국제사회의 이목이 쏠린 아시아의 한국과 대만이 참여한 이유도 마찬가지다. 세계지도는 이들에게 우크라이나 사태는 결코 강 건너 불구경이 아님을 말해준다. 아시아의 참여국은 미국 주도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참가 예상국이기도 해 IPEF가 통상협력체 이상을 추구할 것임을 시사한다. 그 반대편은 △이념(중국, 북한, 시리아, 쿠바, 니카라과)이나 △중립 노선(멕시코, 인도네시아) 혹은 △대러 경제 의존(브라질, 아르헨티나) △군사 의존 및 미국 제재 회피(이란, 쿠바, 니카라과, 베네수엘라) △군사적 이익(터키) △산유국의 경제 실리(사우디아라비아, 베네수엘라) 등등의 이유로 불참했다. 하지만 불참국 중 가장 의외인 국가는 쿼드의 일원 인도와 미국의 최우방 이스라엘이다. 두 나라는 각기 자국 안보의 최대 위협인 중국이나 시리아 견제에 러시아의 지원이 긴요해 미국과 모종의 교감하에 불참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이렇게 보면 불참 이유는 다양하나 냉전 후 잊혀진 듯했던 패자(者) 러시아의 존재감을 확인시켜준다. 미국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중·러 관계의 밀도는 세계 경제의 분단 여하를 가르는 최대 변수이나, 이 또한 중국의 복잡한 셈법이 있어 아직 유동적이다. 미국 견제를 위해선 EU라는 완충지대가 필요하고 ‘세기의 빌런’이 된 푸틴과 원팀이 돼 잃을 것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대러 제재는 러시아 경제부터 가격할 것이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올해 러시아 경제가 13% 역성장할 것으로 예상했다. 에너지 수출이 막힐 경우엔 -20%까지도 내다본다.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러시아의 디폴트 가능성을 시사했다. 러시아는 내부로부터 동요가 예상된다. 그러나 대러 경제제재는 양날의 검인지라 세계 경제의 타격도 적지 않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주가, 금리, 환율 등 글로벌 금융시장의 주요 금융지표가 요동치고 있다. 러시아는 에너지강국일 뿐 아니라 밀, 옥수수 생산량이 많고 특히 전략물자 생산의 필수재인 티타늄 매장량은 세계 3위(13.5%)다. 36개국과 인접한 러시아의 하늘이 막히면 운임 상승이 불가피하다. 따라서 세계 경제는 금융 부문보다 실물경제에서 고공행진 중인 에너지와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른 물가 상승 압박과 공급망 교란으로 심히 고전 중이다.

로이터에 따르면 3월 11일 현재까지 러시아에서 제재 직격탄을 맞은 에너지, 자동차, 금융, 항공해운 등 다국적 기업의 러시아 엑소더스가 줄을 잇고 있다. 세계 경제사 초유의 사태다. 이들 중 특히 대규모 고정투자 사업의 중단은 막대한 손실을 초래한다. 그러나 아직 최악은 오지 않았다. 3월 7일 푸틴은 대러 제재에 동참한 한국을 비롯한 ‘비우호국’ 48개국에 대한 혹독한 경제 보복 조치를 장담했다. 철수한 기업의 자산은 국유화로 맞설 기세다.

이상과 같이 우크라이나 사태는 세계 경제에도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킬 전망이다. 대러 경제제재라는 앵글을 통해 이것이 향후 세계 경제 질서에 미칠 변수를 추려보자.

경제제재는 언제나 양날의 검

첫째, 경제 논리를 압도하는 안보 논리의 등장이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안보의 중요성을 각인시켰다. 전후 EU가 누린 ‘평화배당금(peace dividend)’은 이제 기대난망이다. EU의 GDP 대비 방위비 지출 비중은 1.5~2%인데, 당장 독일이 1.5%에서 2%로 올리기로 했다. 방위비 증가 도미노는 전 세계로 퍼지고 가뜩이나 코로나로 재정건전성이 악화된 상황에서 시급한 사회경제 분야 지출에 여파가 미칠 수 있다. 각국은 안보 불안 불식을 위해 울타리 위에서 어느 쪽으로든 내려와 안보동맹 맺기에 나설 것이다. 미국이 두 개의 전쟁을 치르게 된지라 인도·태평양 전략의 동력이 떨어질 것이란 전망은 기우일지 모른다. 다만 인도, 이스라엘같이 강대국과 확고한 신뢰 관계가 있다면 얘기는 달라질까. 안보가 중시되는 한 국가는 더욱 전면에 부상할 것이다. 안보를 명분 삼은 국가의 과도한 개입은 자유주의 진영 내부로부터 질서의 균열을 낼지 모른다. 국가의 역량과 자질이 과거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만큼 권력의 견제와 감시 메커니즘의 작동 여부도 관건이다.

둘째, 경제 안보의 맥락에서는 효율보다 회복력 중시 기조가 더욱 힘을 받게 될 것이다. 특히 에너지안보가 쟁점으로 부상했다. 여전한 화석연료 의존현실을 절감한 나라들의 탈탄소와 탈원전의 공존 가능성이 실험대에 올랐다. 후쿠시마 대지진을 계기로 독일은 원전 의존도를 더 낮추기로 한 반면 프랑스는 오히려 75%로 올려 결과적으로 대러 의존도를 낮췄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에서 보듯 대형 원전은 위험천만한 공격 대상이 됐다. 기후정의와 동전의 양면을 이루는 에너지안보는 백년을 내다보고 숙의를 거듭한 끝에 신중히 결정해야 할 중차대한 사안이다.

셋째, 경제 안보가 중시되는 한 글로벌화에 종지부를 찍고 보호주의의 진영화가 가속될지 주목된다. 코로나 발생과 미·중 전략경쟁을 계기로 이미 효율보다 안정성과 회복력을 중시하게 됐고 이번 사태를 계기로 더욱 공고해질 것이다. 대러 금융제재를 계기로 금융 분단, 에너지 분단, 기술혁신과 표준 분단 등 분단이 가속될 전망이다. 하지만 그 대안이 자급자족은 아닌 것도 자명하니 가치와 이념을 공유하는 뜻 맞는(like-minded) 우방끼리 규합하는 보호주의의 진영화가 촉진될 것이다. 이것이 투사된 공급망 재편이 미국이 주도하는 소위 ‘신뢰가치사슬(Trusted Value Chain)’ 구축이다. 이중용도 기술품목의 GVC에서 위험국가를 배제하고 우방끼리 TVC로 재편하는 흐름도 강화될 전망이다.

마지막으로, 기능주의도 종언을 고할까. 이번 사태로 서방의 시선은 자연스레 가치와 이념이 다른 중국을 위시해 위험국가로 향하고 있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이 솥뚜껑 보고 덤덤하겠나. 기능주의의 산증인 EU는 두 번의 전화를 겪은 뒤 항구적 평화를 향한 장대한 통합 여정의 시발점을 전략물자의 공동관리를 위한 석탄철강공동체(ECSC)로 삼았다. 이후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를 위시한 무수한 분열의 암초에 부딪혀 쉽사리 통합이 어려웠던 EU를 지금 똘똘 뭉치게 만든 건 경제가 아니라 안보 위기다. 같은 이치로, 중국과 상호의존성을 높여온 동아시아에선 안보 위기로 분열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지자 서둘러 ‘인도·태평양’으로 간판을 바꾸려 하고 있다. 남북경제협력도 신북방정책도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듯하다. 경제제재는 미국의 군사뿐 아니라 금융, 기술 패권도 입증했다. 그러나 대러 제재 장기화로 보호주의의 진영화도 TVC도 강화되면 그때도 경제제재가 힘을 발휘할까. 그만큼 미국의 쇠퇴는 가파르고 그나마(!) 전쟁의 참상을 최소화하는 경제제재조차 수명을 다하는 날 세계의 평화는 어떻게 지킬 수 있을까 하는 암울한 질문에 답해야 하는 시간이 또박또박 오고 있다.

■ 김양희는

세계경제 질서에도 '폭탄' 던진 러의 우크라 침공 [김양희 국제경제의 맥]
일본 도쿄대 경제학 박사. 삼성경제연구소,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등을 거쳐 대구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현재 대학을 휴직하고 국립외교원에서 개방형 직위인 경제통상개발연구부장으로 있다. 최근 보고서는 ‘21세기 보호주의의 변용, 진영화와 신뢰가치사슬(TVC)’(2022), ‘RCEP, CPTPP, 인태경제프레임워크(IPEF): 지역질서의 분절화·진영화 우려와 대응과제’(2022), 논문은 ‘Interactions between Japan's weaponized interdependence and Korea's responses: decoupling from Japan vs. decoupling from Japanese firms’(2021), 저서는 《코로나 19, 동향과 전망》(공저, 2020), 《경제학, 2300년의 대답》(공저, 2022 발행 예정)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