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형규 칼럼] 5년간 교환·환불 안 됩니다
‘소비자는 왕’이라지만 5년마다 열리는 대선 시장에선 유감스럽게도 전혀 아니다. 한국 정치의 소비자(유권자)는 좋든 싫든 두 과점 업체(양대 정당)가 내놓은 제품(대선 후보) 가운데 5년간 쓸 물건을 골라야 했다. 팔 때는 간 쓸개라도 다 빼줄 듯하다가 일단 팔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입 씻는 게 이 바닥 습성이다. 충성고객이든 충동고객이든 덜컥 구매했다가 후회한 경험이 허다하지 않은가.

가장 큰 맹점은 한 번 고르면 5년간 교환·환불이 안 된다는 점이다. 코로나 대유행과 디지털 대전환이 맞물린 이 시점의 대선은 앞으로 5년간 쓸 전자제품 고르기에 비유할 수 있다. 고가 전자기기는 간단한 생필품과 달리 아주 꼼꼼하게 가격과 성능을 따져보고 사야 낭패를 면한다.

하지만 현실은 대략난감이다. 한쪽은 하도 오락가락해서 기능을 종잡을 수 없고, 다른 쪽은 꼭 필요한 기능을 갖췄는지 아리송하다. 퍼주기로 50조, 100조쯤 아무렇지 않게 내놓는 걸 보면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도 형편없어 보인다. GTX 연장·신설, 공항 건설, 도로·철도 지하화 등 툭툭 던지는 공약에 소요될 재원은 가히 계산 불가다. 게다가 서로 베낀 ‘붕어빵 공약’만도 줄잡아 10여 가지에 이른다. 탈모약, 놀이터 같은 소위 소확행·심쿵 공약을 보면 주메뉴가 부실할수록 간판과 곁다리 반찬(스끼다시)만 요란한 음식점이 떠오른다.

둘 다 잘나갈 때는 기고만장하다가 소비자 반응이 나빠지면 곧바로 납작 엎드려 사과 모드로 돌변한다. ‘내로남불’이 심볼인 거대 여당은 다급해지자 ‘586 용퇴’, 문제 의원들 제명, 4선 이상 연임 금지에다 조국 사태와 부동산 실정 사과까지 한꺼번에 쏟아낸다. 그럴 의지가 있다면 왜 진작 안 했나. 선거가 없었어도 그랬을까 싶다. 지리멸렬로 몇 달을 허송한 야당은 ‘핵관’ 파동에 이어 후보 배우자 사과 카드를 또 만지작거린다. 양쪽 다 몇 번이나 더 고개를 조아릴지 두고 볼 일이다.

대체재로 중소 메이커(소수 정당) 제품이 있기는 하다. 품질만 놓고 보면 외려 대형 과점 업체보다 덜 나빠 보인다. 그러나 써본 적 없고, 호환성이 떨어지는 탓에 소비자들은 선뜻 구매하기를 주저한다. 이럴 때 해외 제품이라도 들여오면 좋으련만 이 시장은 수입이 원천금지돼 있다.

이쯤에서 5년 전 선택을 돌아보자. 초유의 반품(탄핵) 사태 직후 치른 선거에서 이미지만 보고 구매했다가 후회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분위기에 휩쓸려 가격 품질 기능은 무시한 대가가 나랏빚 400조원 폭증, 집값 두 배, 세금 폭탄, 노조 천국, 일자리 절벽, 자영업 몰락 아니던가. 그러고도 사과나 반성이 없고, 국민과의 소통에도 담쌓았으니 애프터서비스도 엉망이다. 정권교체론이 줄곧 50%를 웃도는 이유다. 미래를 빼앗겼다고 여기는 20대의 66%, 30대의 55%가 ‘잘못 샀다’고 등 돌릴 만하다.

물론 5년쯤 쓰고 나면 어떤 제품이든 싫증나게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임기 막판까지 대통령 지지율이 40%를 넘나드는 걸 보면 정치 소비자들의 잣대는 가성비나 품질·성능만도 아닌 것 같다. 제품 자체보다 포장과 광고를 더 중요시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 탓이다. 5년 내내 정권의 성과랄 게 없는데도 경제부총리는 연일 자화자찬에 여념없고, 청와대 수석은 “대통령 만나려는 국가가 30개 이상 줄 서 있다”는 용비어천가를 태연히 읊는다. 그러니 최대 공신이 탁현민 의전비서관과 신동호 연설비서관이란 말이 나온다. ‘신하 뒤에 숨은 분’을 위해 ‘이미지 경호’에 남다른 실력을 발휘했으니까 말이다.

어쨌든 41일 뒤면 무조건 선택해야 한다. 써본 걸 또 쓸지, 이참에 바꿔볼지 기로다. 도무지 맘에 안 드는데 안 사면 그만이지 않으냐고? 대선 시장에선 내가 안 사도 남들의 구매 결과가 내 삶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찍었든 안 찍었든 국정실패 청구서(집값, 전·월세, 세금, 대출 이자, 전기료 등)가 모든 이에게 전가되고 있지 않은가.

대선 시장에서 어리숙한 호갱이 될지, 깐깐한 프로슈머가 될지는 각자에게 달렸다. 쇼핑이든 맛집을 고를 때든 그토록 따지면서 향후 5년간 내 삶에 영향을 미칠 선택을 아무렇게나 할 순 없지 않은가. 국정은 팀플레이인 만큼 그 제조업체 실력도 철저히 살펴야 한다. 정치를 그들에게만 맡겨두기엔 너무도 영향력이 커졌다. 정치의 힘을 빼든지, 철저히 감시하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