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훈 칼럼] 대한민국 안전자산을 지켜라
바이러스는 면역력이 약한 개체부터 쓰러뜨린다. 방역에 가장 취약한 집단부터 때린다. 인간이 바이러스를 극복하는 길은 치료약을 개발하거나 면역력을 키우는 수밖에 없다. 인류와 오랜 세월 동행해온 천연두 결핵 흑사병 홍역 콜레라 등은 이제 더 이상 공포의 전염병이 아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도 같은 과정을 거쳐 극복될 것이다. 그때까지 최우선적 과제는 생존이다. 코로나19는 지구촌의 열린 경제시스템을 숙주로 삼고 있다. 외부충격에 취약한 경제일수록 큰 타격을 받는다. 수출로 국내총생산(GDP)의 절반을 창출하고 전 세계에 사업장을 두고 있는 한국이 대표적이다.

가뜩이나 이미 많은 기저질환을 앓고 있는 국가다. 산업경쟁력 약화와 기업들의 투자의욕 저하로 실업률이 높고 좋은 일자리는 씨가 마르고 있다. 정치 과잉과 정부 부문의 비대로 시장의 활력도 크게 떨어지고 있다. 국민소득 3만달러를 넘는 국가 치곤 경제 방역망이 너무 허술하다.

비상시 컨트롤타워는 당연히 대통령이다. 우선 몇 가지 사실을 확인해둘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은 위기를 기회로 바꾼 자랑스러운 여정을 갖고 있지만 운신엔 항상 엄격한 제약이 따른다. 경제뿐만 아니라 외교도 마찬가지다. 우리 정부가 초기에 중국인 입국금지를 하지 못한 것과 지난해 일본과의 지소미아(GSOMIA·군사정보보호협정)를 끝내 파기하지 못한 것은 서로 다른 사안임에도 시사하는 바가 같다.

강대국들 틈바구니에서 우리의 뜻을 제대로 펼치기 어려운 국제질서에 편입돼 있다는 점이다. 확진 상위국인 한국 사정만 특별히 헤아려줄 나라도 없다. 저마다 자국 빗장을 걸기 바쁘다.

경제적으로는 외환위기 가능성을 늘 경계할 수밖에 없다. 같은 위기에 맞닥뜨려도 원화는 폭락하고 엔화가치는 폭등하는 게 현실이다. 양국 경제의 질적 격차가 엄존한다. 지난 2월 말 기준으로 우리나라 주식시장(543조6000억원)과 채권시장(128조8000억원)에 들어와 있는 외국인자금은 같은 시기 외환보유액(4091억달러)을 훨씬 넘는다. 여기서 1000억달러만 빠져나가도 위기는 현실이 된다.

반시장·반기업 정책에 거대 노동조합까지 발호하는데도 대규모 자본이탈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두 가지다. 아슬아슬하지만 한국 기업들에 대한 투자매력이 여전하다는 것, 그리고 국가의 재정건전성이 그럭저럭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우리가 지켜나가야 할 안전자산이 무엇인지를 선명하게 알려주는 대목이다.

소비진작을 위한 재원은 현재 국회에서 논의 중인 추가경정예산 범위 내에서 마련하는 것이 타당하다. 소비 침체의 원인이 사회적 격리 확산에서 비롯된 것이고, 그 양상도 생필품이 아니라 외식 여행 등에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추경 외에 돈을 더 풀 것이라면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의 제안을 권하고 싶다. 기업들의 연쇄 도산을 막기 위한 금융지원을 대폭 늘려달라는 것이다. 멀쩡한 흑자 기업인데도 올해 매출이 반토막 났다는 기업들이 부지기수다. 바이러스 때문에 소비가 미뤄진 것이라면 공급 역시 그때까지 버틸 수 있도록 금융이 본연의 역할을 해야 한다. 과거 기업들에 대한 구조조정 경험에 비춰볼 때 생산과 고용유지 효과가 확실하고 지원금 회수 가능성도 높다.

문재인 대통령이 마스크 문제를 겸허하게 사과한 것처럼 보다 열린 마음으로 위기 극복에 나서주길 바란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대통령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많지 않다. 정부가 동원할 수 있는 자원을 최대한 아껴 쓰면서 민간의 활력을 살리는 데 역점을 둬야 한다. 이참에 기업들의 의욕을 꺾는 반시장적 정책과 규제도 전면 보류해주길 기대한다. 위기로부터 대한민국을 지켜낸 방파제는 언제나 기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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