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 사용 금기시하던 국제정세 반전
한국도 北 선제 핵공격에 대비해야

전성훈 < 前 통일연구원장 >
[시론] 核전쟁에 대비하는 미국과 너무 다른 한국

미국이 전쟁에서 핵무기가 사용될 수 있다는 전제 아래 기민하게 움직이고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핵은 살상력이 너무 크기 때문에 군사적으로 사용할 수 없는 ‘정치적 무기’에 불과하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핵보유국인 미국과 소련이 각각 베트남과 아프가니스탄에서 핵을 쓰지 못하고 패전을 감수한 것은 핵사용에 반대하는 국제여론이 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평화만능주의가 지배하던 탈(脫)냉전 시대가 끝나고 미국, 러시아, 중국의 전략 경쟁이 심화하면서 핵사용을 금기시하던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러시아가 국지분쟁에서 핵을 사용할 가능성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 예를 들어, 러시아가 발트 3국을 침공해 영토를 장악한 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반격할 경우 먼저 전술핵을 사용해 NATO의 진격을 차단하는 공세적인 핵전략을 수립했다는 것이다. 러시아가 신형 전략핵을 개발하는 것은 물론 모두 11종의 전술핵 2000여 개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 증거로 본다.

미국은 러시아의 공세적 핵정책에 대응해 전략핵의 개발은 물론 전술핵의 다종화, 다양화에 집중 투자하고 있다. 이런 배경에서 미 국방부가 발표한 국방예산 가운데 5%에 해당하는 289억달러가 핵 현대화 예산에 배정된 것이다. 또 미군이 핵공격을 당할 경우에 대비해 핵과 재래식 군사계획을 통합하고 부대조직을 정비하는 것은 물론 군비통제정책도 대폭 손질하고 있다.

크리스토퍼 포드 미 국무부 국제안보차관보는 지난 11일 런던 국제문제연구소 연설에서 새로운 군비통제정책을 제시했다. 그는 냉전이 끝난 후 러시아가 적이 아니라는 가정하에 추진했던 정책이 푸틴의 악의적인 조약 위반으로 미국의 안보를 위태롭게 했다고 비판했다. 미국이 중거리핵전력(INF) 폐기 조약에서 탈퇴한 것도 2013년부터 30차례가 넘는 협상을 통해 조약 위반을 시정하려 했지만 러시아가 거부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 중국도 핵무력을 증강하면서 지역패권을 추구하기 때문에 중국의 위협까지 포괄하는 새로운 정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포드 차관보는 새로운 군비통제정책의 기본원칙도 제시했다. 첫째, 미국과 동맹의 안보에 도움이 되는 좋은 조약만 체결한다. 둘째, 조약은 상대방의 위반을 탐지할 수 있는 검증장치가 필요하다. 셋째, 상대의 위반으로 국가안보를 해치는 실패한 조약은 기꺼이 탈퇴하겠다. 넷째, 군비통제 협상은 안보증진의 수단일 뿐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다섯째, 상대에게 정치적 선의를 과시하거나 보여주기식 합의는 하지 않는다.

국제사회는 핵을 사용할 수 있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국가생존을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는 선진국들과 비교할 때, 북한 핵을 마주하고 있는 한국의 대응은 너무 안이하다. 우리의 손발을 묶고 북한의 핵보유는 허용한 ‘비핵화 공동선언’에 대한 입장정리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다.

우리에게는 이 선언이 북한의 집요한 위반으로 폐기됐다고 천명할 용기가 없는가? 국가안보를 타협하면서까지 협상의 끈을 유지하려고 애쓰지는 않았는가? 국지도발을 자행한 북한이 한국의 반격을 막기 위해 핵을 선제 사용할 수 있다는 전제 아래 국민보호를 위한 대책을 시급히 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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